사라예보에서 베오그라드로
2005년 16일(금) 흐림
아침 일찍 민박집을 나와 베오그라드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하여 정류장으로 갔다.
아침 8시에 사라예보에서 베오그라드로 떠나는 버스에 올라갔다. 그런데 거기에 프라하 민박집에서 만났던 안00 양(집이 서울이라 했다.)이 타고 있었다. 참으로 반가웠다. 장기 여행을 하면 이렇게 뜻하지 않은 만남이 종종 이루어진다.
민박집 주인 여자(Lojo Jasmina)는 내가 한국 사람을 만나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더니
한발 물러서서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이틀간 나와 함께 다니면서 들었던 情을 빼앗겼다는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다.
자스미나는 키가 크고 몸집도 나의 배 정도는 된다.
그런 그녀가 조그맣고 못난 동양인인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지나칠 정도로 친절했다.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떠나는 나를 위해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련해주었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먹을 점심까지 챙겨주었다.
게다가 버스정거장까지 따라와서 배웅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버스를 타고 떠날 때까지 우리 둘만이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다른 사람(안 양)에게 빼앗겼다는 서운함을 노골적으로 나타내어 민망하기도 하였다.
버스에 올라와서 내 자리 옆에 앉아 있다가 나를 한참 포옹하면서 눈물까지 내비췄다. 안 양을 보기가 민망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진정이 참으로 고마웠다.
이제 이 길을 떠나면, 자스미나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렸다.
출발 직전 버스에서 내려가는 그녀의 눈가에 맺힌 이슬이 내 가슴 속으로 젖어들었다. 자스미나는 주책을 부리기는 하였지만 무척 순수한 여인이다.
버스가 출발하여 정거장을 빠져나가면서 점점 멀어져가도,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은 이젠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국경까지는 대부분 산악지대였고 험준했으며 눈으로 뒤덮였다. 보스니아에서 세르비아로 넘어가는 국경은 큰 강을 사이에 두었다. 다뉴브 강의 한 지류로 보였다. 국경통과 절차가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였다.
강을 건너 세르비아지역에 들어서서는 평야지대를 달렸다. 공장지대를 지나기도 하고 소도시와 촌락을 지났는데 보스니아지역보다는 도로 사정이 좀 나은 것 같았다.
베오그라드에 5시에 도착하였다.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버스 정거장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깊게 드리워졌다. 나는 베오그라드에 도착하면 기차역 앞에 있는 간판이 좀 큰 여관을 찾아들려고 했다. 그런데 안양이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잡고, 베오그라드 시내 지도를 펴서 유스호스텔의 위치를 가리키면서 현재 위치에서 유스호스텔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 학생은 우리를 유스 호스텔이 있는 부근까지 안내해 주었다. 그러나 호스텔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우리는 다시 인포메이션 오피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찾아갔다.
호스텔로 가기 전에 우리가 베오그라드의 버스 정류장에 내렸을 때 택시 기사들과 삐끼들이 굶주린 사냥개처럼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우리는 그 귀찮은 존재들을 간신히 물리치고, 버스 정류장에서 큰길로 나왔다. 그리고는 어디에서나 마찬가지고 가능한 젊잖아 보이거나 공무를 띠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골라서 길을 묻기로 하였다.
학생들은 가장 순수하고 티 없는 존재들이다.
버스에서 내린 자그마한 동양인들이 약아빠진 삐끼와 택시기사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모습을 본 어떤 학생들이 우리를 도우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내어 놓은 지도를 보자 저희들끼리 갑론을박하더니, 한 학생이 우리를 데리고 호스텔이 가까운 인포메이션 오피스까지 데려다 주었던 것이다. 참으로 고마웠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빠른 사고와 순발력으로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안 양과 같은 젊은 동포의 도움을 받아 어려웠던 여러 번의 고비를 잘 넘기곤 하였다.
우리는 숙소를 잡고 시내 중심가로 나와 저녁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내일 아침부터는 호스텔 주방을 이용하여 식사를 해결하려고 슈퍼마켓에서 이틀 동안의 먹거리를 준비하였다.
이 호스텔은 1.2층인데 1.2층 공간이 열려 있어서 아래층과 위층이 한 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사교적인 서양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큰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그 이야기 소리가 아래 위층을 함께 울렸다. 처음에는 꾀 시끄럽겠구나 하고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그들도 옆 사람들에게 패를 끼치지 않으려고 절제 있는 행동을 보였다. 그들의 주변에서 잠자리에 든 사람이 있으면 하던 이야기도 그치고, 걷는 것도 고양이 걸음을 하였다.
이 호스텔은 비교적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다
오늘 저녁은 편안한 잠자리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자스미나는 지금쯤 나의 존재를 조금이나마 생각하고 있을까.........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아래 사진들은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로 넘어가기 직전까지 펼쳐저졌던 설산 풍경입니다.
아래 두 개의 사진은 밤에 베오그라드레 도착해서 본 야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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