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그라드
2005년 12월 17일(토) 구름
오늘은 안 양과 함께 아침 일찍 칼레메그단(Kalemegdan)이라고 부르는 성채(城砦)로 향하여 호스텔을 나섰다.
칼레메그단 성채는 좌측으로 사바(Sava) 강이 전방 우측의 다뉴브(도나우:Dunav) 강에 합류하는 지점의 돌출한 언덕에 위치하였다. 성채 내에는 승리자의 상(Pobednik)이 도나우 강을 향하여 힘차게 서 있고, 정교 교회와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각종 무기와 장비들을 전시해 놓은 전쟁 박물관, 그리고 요새를 둘러싼 축성과 성 안으로 들고 나던 성문들이 있다. 성문은 많이 허물어진 채 그 형태를 유지하거나 혹은 복원하였으며 성 안에는 발굴 및 복원을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성채 안 넓은 공간을 공원으로 조성했는데, 공원 입구 길 양쪽에는 유고의 역사적 인물들의 공적을 기리는 흉상을 새워놓았다. 쌀쌀한 겨울인데도 공원을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노점상들이 공원 안까지 들어와서 좌판을 벌려 놓은 모습에서 이 나라의 현재 상황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원을 나와서 그 앞에 있는 베오그라드 시립도서관(Bedgrade City Library) 에 들어갔다. 도서관 장서열람실로 들어가려했더니 2층은 안되고 다른 곳은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하였다. 장서관리가 전산화되지 못하고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서관 안에는 이용자들로 붐볐다. 도서관이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것 같았다. 도서열람실 이외에 시청각실, 전시실, 회의실 그리고 휴게실 등이 있다. 우리는 한 코너에 책과 관련한 그림 전시회에서 재미있는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밖에서 추위로 인하여 얼었던 몸을 어느 정도 녹이고 밖으로 나왔다.
도서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세르비아 정교회총주교교회(Patriachate of the Serbian Orthodox Church)로 갔다. 정교회 안은 참으로 화려하였다. X-마스를 앞두고 행사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교회 안을 오가면서 장식물들을 살피던 한 동양인이 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사라예보 민박집에서 함께 지냈던 일본 학생이었다. 그는 오늘 새벽에 베오그라드에 도착하였는데 오늘 베오그라드를 대충 둘러본 후 밤기차로 소피아에 간다고 하였다.
우리는 일본 청년과 베오그라드 시내 관람을 같이 하기로 하고 일행이 되어 다음 코스를 향하였다. 총주교교회에서 나와서 큰 길 건너에 있는 총주교의 건물을 구경하려고 들어가려고 하였다. 갑자기 경찰들이 나타나 호르라기를 불면서 길을 정리하더니 우리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제지하였다. 영문을 몰라서 우리는 길 가로 물러서 있었다.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면서 타나난 두 대의 승용차가 총주교좌 건물 앞에 멈추더니 고관인 듯한 인물들이 현관으로 올라가고 현관에는 언제 나왔는지 성직자들이 나와서 그들을 맞아 들였다.
우리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루비카왕비의 집(Princess Ljubica's Mansion)’으로 갔다. 일국의 왕비가 거쳐하던 곳으로는 아주 소박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각 실에 진열해 둔 가구와 용품들이 섬세하고 상류층만이 향유하고 서민들은 범접할 수 없는 것들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감이 들었다. 진열된 물품들이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았던 영향이 보였다.
왕비실을 나와 정부 청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의회건물 대통령궁 시청사 연방의회건물 정부 종합청사가 운집한 곳을 갔다. 감시 카메라가 여기저기에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것 같았다.
세르비아 의회 건물 앞에서 여경비원이 다가오기에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였더니 순순히 응해주었다. 그런데 일본 청년과 안양이 같이 찍으려고 나와 자리를 바꾸려 하니까 피하였다.
대통령 궁 앞에서도 내가 궁 앞에 서서 사진을 찍고 나니까 사복 경비병들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우리가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허락하면서 같이 찍자고 하니까 완곡하게 사양하였다. 대통령 궁 둘레에는 누구나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나무의자를 마련해 두었다. 삼엄한 경비가 보이지도 않고 아주 조용하고 한가하며 사람들이 자유롭게 대통령 궁 주위를 배회할 수 있었다.
공산주의 국가였던 나라, 독재가가 통치하였던 나라, 그리고 유고 연방 해체를 막기 위해서 전쟁과 살상을 감행하였던 나라의 대통령 궁이 이렇게 평온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우리는 시내 중요한 구경거리가 끝난 것 같아서 일본 청년에게 또 볼거리가 남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의 여행 책자를 보이면서 1999년 나토의 공습으로 파괴된 정부 건물을 보려가자고 하였다. 지도를 따라 조금 내려갔다. 세르비아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맞은편의 구 정부건물들이 대파되었다.
알바니아계 이슬람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세르비아의 코소보 주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세르비아와 코소보 간에 큰 유혈극이 빚어졌던 1999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국제연합(UN)이 개입하여 베오그라드를 공습하여 파괴된 것이다. 1999년 중반부터 코소보는 UN 관할이 되었다가 2001년 총선에서 알바니아계가 압승하여 자치정부가 들어섰다.
호스텔에 와서 젊은 직원에게 정부 건물이 파괴된 지 꾀 오래된 것 같은데 그대로 방치해 두어서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 같다고 했더니, 1999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그렇게 했다면서 ‘우리는 그 일을 잊지 않고 있다’고 흥분해서 말하였다. ]
우리는 일본 청년과 함께 다시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잘 알려진, 세르비아의 유명한 지도자였던 크네즈 미하일로 경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리퍼블릭 광장 부근 상가를 돌아보았다. 레스토랑과 카페가 늘어서 있는 스카다르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가방을 사가지고 호스텔로 왔다. 호스텔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고 일본 청년은 저녁차로 소피아(Sofia)로 향하여 갔다.
안 양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떤 서양 여인이 “안녕하세요?”하면서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우리는 너무나 반가워서 “어떻게 한국말을 그렇게 잘하느냐?”하였더니 속초와 이천에서 영어강사를 했었다고 하였다. 그녀는 미국에서 출국한 지 6년이 지났으며 조부모의 나라인 아일랜드로 가서 국적을 취득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아주 떠난 것이냐?’하고 물었더니 1년 정도 더 있을 예정이라고 하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잠잘 곳 만들어 달라.”고 하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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