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 우피찌 미술관, 그리고 베네치아로
2006년 2월 14일(화) 맑음
오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시하는 우피치 미술관을 관람하였다. 그리고 오후에 는 베네치아(Venezzia)로 왔다.
우피찌 미술관
아침 일찍 피렌체 중앙역으로 가서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표(유로스타:-27유로)를 사고, 바로 우피치 미술관으로 갔다. 아직 8시도 되지 않았는데 매표소 앞에는 많은 동양인들(대부분 일본사람들 같았음)이 줄지어 서 있었다. 8시 30분에 매표하기 시작하였다.
3층 복도에 오르니 복도 양편 창위 쪽에 작은 그림들이 쭉 전시되어 있고 바닥에는 조각품들을 늘여 놓았다. 앞 사람들을 따라 첫째 방으로 들어갔다. 주로 성화(聖畵)들로 채워졌다. 수많은 작품들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책에 안내해 놓은 대표적인 작품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책에 간략하게 소개된 작품을 좀더 유심히 보고 다른 작품은 대강대강 보면서 지나갔다.
<< 1300년대 작품으로 지오또의 “모든 성인들의 성모마리아(Madonna di Ognissanti)”, 시모네 마르띠니에 의한 최고의 아라베스크 양식인 수태고지(Annunciazione)가 있다.
1400년도의 성화로는 젠띨레 다 파브리아노의 “성체조배(Adorazione)”, 바울로 우첼로의 원근법을 이용한 “성 로마노의 전투(Battaglia di San Romano)”가 있다. 이곳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들은 삐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으로 거대한 바띠스타스포르짜와 페데리꼬 다 몬테펠트로의 초상화가 있으며, 인문주의 이상의 절정을 이루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Nascita di Venere)”과 “봄(Primavera)”이 있다.
필립보 리삐의 “성모와 아기예수(Madonna col Bambino)”, "수태고지(Annunciazione)"와 “동방 박사들의 경배(Adorazione dei Magi)”, 미켈란젤로의 “성가정(Sacra Famiglia)”, “똔도 도니(Tondo Doni)”는 처음으로 매너리즘을 표현한 작품이다.
라파엘로의 평온함을 완정하게 묘사한 “마돈나 델 까르델리노”가 있다. 황금색으로 빛을 발하며 따뜻한 느낌을 주는 띠찌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매너리즘의 천부적인 작가인 폰토르노의 대표적인 “엠마오의 그리스도”, “음악의 천사”로 칭송받은 로쏘 피오렌티노, 공포스러움을 강하게 묘사한 까라바치오의 “메두사”가 있다. >>
한번만 보기에는 너무 허술하여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두세 번씩 반복하여 보면서 머릿속에 각인시켜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둔한 머리가 따라 주질 않았다. 8시 30분에 입장하여 11시 40분에 미술관을 나왔다.
여관으로 돌아와서 12시 20분경에 체크아웃하고 12시 39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우피치 미술관
우피치 미술관에서 바라본 베끼오 다리
복도에 전시된 조각
복도에 전시된 조각
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zia)로~
피렌체를 출발하여 15시 28분에 베네치아 도착 예정이었는데 약 25분 연착하였다.
베네치아는 120여개의 섬이 400여개의 다리로 연결 되어있다고 한다. 눈에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수면이 조금씩 높아져서 아름다운 건물들이 침식되며 또한 많은 섬의 주민들이 육지로 이주하는 형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세상의 어느 도시와도 비교될 수 없는 고도의 문명과 자연(석호와 섬들)이 조화를 이루어 빛나는 물의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베네치아의 전성기는 1400년대였다. 십자군 원정 때는 특히 부(富)를 누렸었는데 이 富를 바탕으로 최강의 공국으로 막강한 세력을 과시하였고 예술과 문화에 있어서도 전성기였다. 그러나 1571년에는 오스만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이 때부터 세력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하였으며 1797년 나폴레옹에게 정복된 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다가 1866년에 이탈리아에 귀속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세력이 기울 때에도 예술적인 면에서는 변하지 않고 꾸준히 발전해 왔다. 특히 1800년대 말기부터 1900년대 초까지의 베네치아는 문화적으로 다시 부흥기를 맞았다. 항구는 다시 정비되고 도시를 산업화 하였으며 베네치아 국제 미술 비엔날레와 베네치아 영화제가 탄생되었다.
오늘날의 베네치아는 바닷물에 위협을 받고 있으며, 많은 시민들이 도시를 떠나고 있는 현실이기는 하지만, 나날이 증가하는 여행자들의 꿈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베네치아 싼타루치아 역사를 빠져나와서 바포레또를 타고 ‘베네치아 민박집’을 찾아서 여장을 풀었다. 1박에 30유로로 좀 비싼 편이다. 비싸기는 하지만 방이 넓고 깨끗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집의 규모도 크고 궁전처럼 생겼다. 주인 말로는 실제로 궁전의 하나였다고 한다.
오후 늦은 시각에 민박집을 나와서 피자집에서 피자 한 덩어리로 저녁식사를 대신하였다. 통행로가 좁기는 하지만 차량들이 다니지 않아 좋았다. 어둠이 완전히 내린 다음에야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를 찾았다. 밤풍경이 매혹적이었다. 리알토 다리 위에서 물과 어우러진 도시의 경관은 한마디로 신비로웠다. 다리 양편에는 상점이 들어 있고 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다리에서 다시 산 마르꼬 광장을 찾아갔다. 산 마르꼬로 광장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은 보석같이 반짝이는 작은 전구로 장식하여 휘황찬란하다. 길 양편의 상점 윈도우에 진열해 놓은 상품들은 그야말로 고급스럽고 찬란한 예술품처럼 돋보이게 장식해 놓았다. 한마디로 예술의 거리를 거닐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밤이라서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길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겨우 산마르꼬 광장을 찾았다.
산 마르꼬 광장에는 어둠이 내려 양쪽 건물에서 새어나온 전기불에 의지하고 있었다. 높은 종루, 싼 마르꼬 성당, 두깔레 궁전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바다 쪽으로 갔으나 밤이라서 바다를 볼 수가 없었으므로 낮에 다시 와서 보기로 하고 광장으로 돌아왔다. 광장 중앙에서 건물이 토해내는 빛과 빛에 노출된 주변 건물들의 낯선 모습에 취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 상점에서 새어나오던 불빛이 사라지기 시작할 무렵 광장에서 다시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여관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서 맥주 한 병을 사서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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