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동남아 여행.7 -- 루앙프라방

어르신네 2009. 4. 10. 18:52

 

루앙 프라방(Luang Phrabang)

 

2009년 3월 8일 (일) 맑음

루앙 프라방은 전원도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루앙 프라방의 중심 거리를 메우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양 관광객이다.

왕궁 박물관 앞의 중심거리는 기념품상, 음식점 그리고 여행사가 주를 이룬다.

 

라오스는 태국과 마찬가지로 불교가 이들의 생활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시민들은 부처 앞에서 무뤂을 꿇고 아주 경건하게 기도를 하고 간다. 젊은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한결같이 파고다 앞을 지날 때에도 두 손을 합장하면서 경건한 불심을 보였다.  

시내의 많은 부분이 불교사원이다.

 

메콩 강변으로는 큰 나무 숲 밑에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밤에는 작은 전구들로 불을 휘황찬란하게 밝혀 놓고 손님을 끌고 있다.

길 맞은편과 그 이면에는 게스트 하우스들이다.

거리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뚝뚝이와 택시가 여기저기에서 한가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루앙 프라방은 메콩 강으로 흘러드는 칸 강(Khan River)과 메콩 강을 낀 반도 형태의 도시로 도시 중앙에 푸시(Phou Si)라는 산이 돌출해 있는데 산 꼭대기에 황금색 탑을 세워두었다.

이 Phou Si를 중심으로 서쪽은 메콩 강으로 이어지고 북쪽은 Khan River, 동남쪽으로는 민가와 경작지가 보였다. 동쪽으론 곧고 넓은 도로가 멀리 벋어 있는데 공항과 싼티 째딘이란 곳으로 가는 길이다.

 

선선한 이른 시각에 볼거리를 찾아 나섰다. 왕궁박물관을 찾았는데 책자에 기록되어 있는 입장료보다 만 킵이 더 오른 삼만 킵이었다.

박물관 앞에서 한국 젊은이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박물관 대금이 터무니 없이 비싸서 외형만 구경하고 나간다고 하였다.

왕궁박물관을 배경으로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해어졌다.

해외에서 한국인들을 이렇게 기분 좋게 만나면 얼마나 좋은가------.

 

 

최근 라오스 국가의 정체가 공산화가 되면서 왕정(王政)이 폐지되고 왕궁은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왕궁 박물관으로서는 조금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왕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는 장식품이라든가 국가 수장(首長)으로서 생활한 격식과 그 족적이 잘 드러나도록 자료를 정리해 놓았고, 왕궁생활 용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왕이 사용하던 집기와 그 일가들의 생활용품들 그리고 각종 장식품들과 기념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배열해 놓았다.

그런데 왕궁 집기들을 보면서 왕과 그 가족들의 생활이 사치했던 것 같지 않고 오히려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었다.

 

왕가가 누렸던 영화의 덧없음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지금쯤은 그 왕가의 일족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왕궁을 나오면서 일국의 왕으로써 차지했던 영화를 박탈당하였을 때 그의 비통함과 그 가족들이 겪었을 비애가 어떠했을까, 또 왕으로서 국민들의 신망은 어떠했기에 왕정이 무너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 나왔다.

파방을 자세히 못 보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왕궁을 나와서 바로 앞에 우뚝 솟은 그리 높지 않은 푸시(Phou Si)라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푸시 정상에는 황금색의 탑이 높이 세워졌다. 정상에서는 루아 프라방 시내 전체를 다 관찰할 수 있는데 연무가 짙게 깔려서 시야가 맑지 않고 멀리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정상에 앉아 메콩 강을 내려다보는 경치는 일품이었다.

새벽 일출이나 일몰을 보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그리고 메콩 강과 그 맞은편의 산들을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겨 볼 만하다.

그런데 이곳에 들어오는 입장료 20000킵은 좀 과한 것 같다.

 

산을 내려와서 왓 씨앙통에 갔으나 입장료가 2만 킵이라서 좀 억울한 금액이란 생각이 들어서 발길을 돌렸다.

 

오늘 푸시에 올라갔을 때 한국의 젊은 여인과 미국인(커플?)을 만났다. 그들도 나와 같은 슬로보트를 타고 왔다면서 내일 다시 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였다. 미국인은 뉴욕 사람이고 광명에서 원어민 교사로 복무하다가 임기를 마치고 지금은 여행 중이라고 하였다.

 

저녁에 방(방)을 바꿔달라고 했더니 석양을 받아 달궈진 벽이 뿜어내는 열기가 방안 가득 채워졌다. 게다가 거리에 면해 있어서 오토바이를 비롯한 각종 차량의 소음이 방안으로 밀려들었다. 방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하였다.

주인이 착해서 다른 여관으로 옮기기도 그렇고-----

 

2009년 3월 9일 (월) 맑고 오후에는 구름

짙은 연무현상 때문에 메콩 강의 폭이 그리 크지 않은데 바로 맞은편의 산의 윤곽이 희미하지만 여관이 메콩 강가라서 바라보이는 강과 주변 경관이 좋다.

건기라서 강물이 줄어 모래사장이 많이 드러나 있고, 히말리야에서부터 달려온 강의 도도한 물살이 만들어내는 물무늬와 그 위를 신선처럼 오가는 나룻배들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늘 왕위앙으로 가려던 계획을 접고 루앙 프라방에서 하루 더 묵으면서 어저께 보려다가 포기한 왓 씨앙통을 관람하고 강변을 따라 푸시 산을 하 바퀴 돌아 본 다음 오후에는 여관에서 쉬기로 했다.

 

여관에서 강변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메콩강으로 들어오는 지류인 남 칸(Nam Khan)가 만나는 지점에 왓 씨앙통이라는 루앙 프라방을 대표하는 사찰이 있다.

본당 씸(Sim) 내부에는 정면에 좌불 상이 있고 그 앞 좌측에 이절에서 득도하여 존경을 받아온 스님의 상(像)을 부처상처럼 모셔 놓았다.

그리고 사방 벽면에도 빈틈없이 벽화가 금빛으로 그려져 있는데 부처의 생애를 담은 짜따까(Jataka)를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외벽에도 아름다운 불화들이 금빛으로 그려져 있다.

본당 후면에도 불당과 탑이 있다.

좌측은 와불 상이고 외벽은 라오스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모자이크한 그림들이다.

우측 불당은 문을 닫아 무엇이 그 속에 모셔 놓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메인(Main) 입구의 우측에 황금색 건물이 있는데 왕실의 영구차를 보관한 곳이다.

머리가 7개 달린 장례용 마차가 실내를 모두 차지하였고 사방 벽면에 여러 장구들을 정리해 놓았는데 그것은 영구차에 딸린 부속물 같았다.

 

오늘은 짙은 연무인지 엷은 구름인지 햇볕을 엷게 하여 다니는데 부담은 없었다.

남칸(Nam Khan) 강을 따라 갔더니 그쪽에는 조금 고급스런 게스트 하우스들이 몰려 있다.

강변 우측은 푸시 산이 솟았고 좌측은 남 칸이 흘러 주변이 운치가 느껴지는 경관이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이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강변도로를 질주하기도 하였다.

 

푸시 산을 우측으로 끼고 돌아가니 달라 시장(Talat Dala)이 나타났다.

이 시장은 현대 공산품 시장으로 전자제품과 옷가게들이 주를 이루었다.

시장 규모도 제법 크고 깨끗한 현대식 건물이어서 꽤 고급스러웠다.

 

시내를 더 돌아보기도 지루하여 메콩 강변으로 와서 가지고 온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여관으로 돌아와서 낮잠을 한숨 잤다.

저녁에는 야시장을 돌아보았다. 야시장이 제법 큰 규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시장은 백열등과 형형색색의 색상의 상품들이 어울려 휘황찬란하다.

야시장을 거닐면서 손녀들에게 사줄 게 없을까 하고 돌아보았으나 막상 마땅한 것이 보이지 않아 그냥 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루앙 파방에서 묵었던 여관 간판

 

왕정 시대의 왕궁 앞에서 젊은 우리 동포를 만나다

 

왕궁 앞의 한 사찰

 

사찰에 그려진 벽화

 

시내 중간에 솟아있는 산 푸씨 꼭대기의 탑

 

푸씨에서 메콩강을 배경으로

 

오후 1시는 취침시간

 

 

 

 

다음은 야시장 풍경들

 

 

 

 

 

 다음 사진들은 왓 씨앙통 

 

 

 

 

 

 

 

 

아낙들이 짐을 메고 가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