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2009년 3월 1일 (일) 맑음
쑤코타이에서 아침 일찍 터미널로 나와 차앙마이 행 버스를 탔다.
여행자들이 버스 안을 반 이상 메웠다.`버스 좌석이 좁기는 하지만 앉아 갈만 하였다. 그러나 몸집이 크고 다리가 긴 서양 사람들은 무척 불편해 하였다.
12시가 지나면서부터는 버스가 산림이 울창한 높은 산길을 오르고 올라 고개를 힘겹게 넘었다. 그리고 가파른 산길을 따라서 한참 내려갔다. 산길 저 아래에 분지를 이루고 있는 그곳이 치앙마이였다.
Luang phang에서 버스에 오른 태국여인이 내 옆에 앉아 유쾌하게 웃고 떠들면서 말을 걸어오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몰라 그냥 대꾸하자니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였다.
그러나 그녀와 나란히 앉아 오면서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치앙마이까지 왔다. 그녀는 자기의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루앙 팡에서 가이드를 한다고 하였다. 가이드의 영어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13시 40분경에 치앙마이에 도착하였다.
역시 삐끼들이 달라붙어서 혼란스러웠다.
삐끼들의 손아귀에서 겨우 빠져나와생태우로 30바트에 한국인의 게스트 하우스인 미소네로 갔는데 부근까지 가서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겨우 찾았다.
도미토리 150바트에 들었다.
미소네가 있는 이곳 Nimmanhaemin Rd는 성 밖에 있는 신시가지로 조용한 곳이다.
그러나 주위가 거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과 유흥점이 많이 보였다.
늙음은 순발력이 둔하고 판별력이 떨어지나 신중성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것마저 없고 엄벙대고 조급하다.
오늘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생태우를 태워주겠다고 접근한 기사를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가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여 겨우 빠져나왔고, 여관 바로 옆에 와서도 주위를 잘 살피고 지형을 따져보지도 않고 사람들 말만 듣고 움직이다가 생고생을 하였다.
치앙마이에서는 관광지답게 서양인들이 많이 보였다. 음식점과 각종 카페들이 즐비하다.
이 지역은 신시가지로 혼잡하지 않고 정제된 분위기로서 고급스럽다.
거리에 나다니는 현지인들의 외모나 차림새도 세련되어 보인다.
거리의 각종 표지판이 그런대로 구실하는 것 같다.
그런데 교통질서만큼은 방콕과 다른 것 같지 않다.
미소네는 도미토리를 빼고는 방값과 음식값이 생각보다는 비싼 것 같다.
그렇지만 한국고유의 음식맛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서 좋은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이 보였다.
도미토리에 미리와서 숙박하고 있는 젊은이와 저녁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미술을 하는 젊은 사람으로서 장기 체류하면서 외국풍물에 대한 아름다음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일 레프팅과 뗏목 타기 및 고산족 마을 방문 등을 위한 1박 2일의 트래킹을 하려고 1300바트를 주고 투어(Tour)를 신청하였다.
2009년 3월 4일 (수) 맑음
오늘은 치앙마이 시내를 돌아보았다. 햇볕이 강하여 오후 2시 이후에는 시내 관람을 포기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4시간 이상을 도보로 다녔더니 너무 피로하여 여관에 돌아와서는 오후 6시까지 잠에 덜어졌다.
감각이 둔해서 거리의 방향감이 잘 잡히지 않아 필요 없는 길로 들어가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볼거리를 만나기도 하였다.
Nimmanhaemin Rd에서 생태우를 타고 치앙마이 시내에 있는 대표적인 사원 “앗 프라씽”에 갔다. 왓 프라씽은 1345년 멩 라이 왕조의 King Pha Yu에 의해 건립된 사원으로 전형적인 란나 형식을 띤다고 한다.
정면에 대불당이 있고 그 뒤에 작은 불당을 위한 라이캄(Vihan Lai Kham)에는 치앙마이를 대표하는 프라씽이 묘셔져 있다고 하는데 안목(眼目)이 부족하여 그 많은 불상 사운데 프라씽이 어느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벽면에는 19세기의 벽화들이 그려져 있는데 좌측 벽면은 많이 훼손되어 그림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고 정면을 바라보면서 우측은 그래도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신성한 불당에 들어갈 때에는 모자를 벗고 경건한 마음으로 몸가짐을 단정히 한다. 그런데 불당 안에 개들이 어슬렁거리면서 불당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는 것은 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원에서도 불당 안에 개들이 들어와서 돌아다녔다.
왓 프라씽에서 치앙마이 여행자거리인 타논 라차담넌 (Thanon Rachadamnoen street)로 나왔다. 이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반수 이상이 서양 여행객이었다. 거리의 상점들은 대부분 여행자들을 상대로 하는 여행사, 기념품가게, 음식점들로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치앙마이의 거리는 세계인의 여행지로서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거리이다.
랏차탐넌 거리를 걸어가면서 보이는 사원들도 들렸다.
일본사람들이 사원에 들어와서 합장하고 기도하는 모습, 혹은 스님들과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찰에는 일본어로 안내한 표지판이 있었다. 아마 많은 일본인 불교신자들을 배려한 것 같다. 그리고 거리의 상점에도 영어와 일본어 간판이 많았다.
호객하는 뚝뚝이 기사들이나 기념품 가게 직원들의 대부분이 나에게 일본말로 접근하였다. 내가 일본사람처럼 보였나? 일본 사람들은 이곳에서도 인기가 높은 모양이다.
랏차탐넌 거리를 끝까지 걸어갔더니 Ping River가 나타났다.
Ping River에서 발길을 돌려 와로롯 시장(Talal Warorot)으로 들어갔다.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이지만 그런대로 활기가 넘쳤다. 치앙마이가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관광산업이 경제적으로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이곳 지역의 서민들이 이용하는 재래시장은 서민생활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와로롯 시장을 나와서 문 무앙(Thanon Moon Muang) 거리에 있는 왓 치앙만(Wat Chiangman)을 찾아갔다.
이 거리에도 여행객들이 많았고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도 보였다.
왓치앙만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 한다. 1296년 맹라이 왕에 의해 건립된 사원인데 작은 불당에는 치앙마이 최고의 불상으로 꼽히는 프라 실라(Phra Sila)와 스리랑카에서 전래된 석조 조각인 프라 쌩따마니가 모셔져 있다.
작은 불당 한 켠에서 젊은 스님 한분이 큰 대자로 누워 낮잠을 즐기로 있었고, 큰 불당에는 노(老) 스님 한 분이 앉아서 불경을 독송하고 있었으며 본당 한가운데는 개 두 마리가 한가하게 어슬렁거렸다.
개가 나에게 다가와서 내 몸 여기저기를 수색하듯이 핥는데 개가 피부병이 있어서 쓰다듬어 줄 수가 없었다.
불당에서 나와 사원의 정원 의자에 앉아 쉬었다가 거리로 나와서 여관으로 걸어서 간다는 것이 방향을 잘못 잡아 엉뚱한 곳에서 헤맸다.
다리도 아프고 피곤하여 생태우를 잡아타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4시간 이상을 걸었다. 피로가 겹쳐서 여관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쓰러져 정신없이 자다가 오후 6시경에야 일어났다.
내일 치앙 콩으로 갈 준비를 하고 저녁을 먹으려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이 여관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곳이라서 고객이 대부분 한국인들이다. 한국인들은 계단이나 복도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서로 외면하고 지나친다. 서양인들을 만나면 서로 눈인사라도 주고받는데....... 나부터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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