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에서의 트레킹
2009년 3월 2일(월) 맑음
오늘은 트래킹에 참가했다. 트래킹에 참여한 인원은 모두 12명이었는데 한국인 3명 영국인 8명 미국 여인 1명 모두 12명이었다.
치앙마이에서 생태우를 타고 점심식사 장소까지 오는데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생태우가 시내를 벗어나 포장된 길이 파손된 산간 도로로 들어서면서부터 차가 덜컹거리고 요동을 쳐서 점심식사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힘들었었다.
점심식사가 내 입맛에 맞아 트래킹의 첫 느낌이 놓았다.
점심을 먹고 바로 코끼리 타기를 하였다.
2명씩 코끼리 등에 올라 30여분을 농장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인데 나는 미국 여학생과 같이 탔다. 그녀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재학생이라 하였다. 몸집이 크고 기동성이 떨어져서 코끼리 등을 오르고 내릴 때 무척 힘들어하였다.
코끼리는 몸집이 크고 둔해서 움직임이 느렸으나 그 모습이 순박해 보였다. 코끼리를 타고 농로를 따라 개울로 내려갔다. 코끼리 새끼가 물속에서 이리저리 딩굴면서 물을 품어 우리들에게 날리면서 노는 모습이 천진스럽고 귀여웠다. 그러나 이 큰 덩치의 코끼리가 인간에 의해 학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코끼리 투어를 마치고 바로 고산족이 산다는 산상(山上)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했다.
산상을 향하여가는 오솔길로 접어들다가 가파른 산 기슭을 오르는 힘겨운 코스였다.
3시간 정도 걸어서 올라온 것 같다.
땅이 메말라 먼지가 일어나고 길섶의 풀잎과 넝쿨들이 모두 날카로운 가시를 달고 사람을 할킬 것처럼 곤두 서서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트래킹을 하는 팀이 우리 말고도 두어 팀이 더 있었다.
길이 외길이고 건조기인데다가 많은 사람이 다녀서 먼지가 보얗게 쌓였다.
그러나 오랜만에 산행을 하는 길이라서 기분은 좋았다.
산세가 부드럽고 산림이 그늘을 드리워주어 가파른 길을 오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런던에서 온 영국인들은 등산 훈련을 하지 못해서 그런지 산을 오르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특히 미국에서 온 여학생이 가장 힘들어했다.
영국인들과 산을 오르면서 사진을 찍어주고 하는 가운데 친밀감을 쌓았다.
4시 50분경에 드디어 라후족이 사는 마을에 도착하였다.
라후족 마을의 가옥들은 쑤코타이를 들어오면서 보았던 것들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의 용모가 몽골리안과 흡사하고, 태국사람들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태국 국민으로 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며 거주지가 제한되어 있어서 산 아래 도시로 내려갈 수 없다고 한다.
밤에는 이곳 원주민 청년들이 기타를 가지고 와서 놀이마당을 펼쳤다. 그들은 현대 서양 가요를 많이 익혀서 놀이 분위기를 주도해 나갔으며 노래와 악기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야심토록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청청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오늘 우리들의 산행 끝자락을 축복하며 반짝였다.
밤이 깊어지자 한기가 느껴져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009년 3월 3일 (화) 맑음
아침에 온갖 가금류가 거리를 메웠다.
서로 경계의 눈빛도 없이 어울려 다니는 것이 신기하였다.
라후 족들의 생활상을 자세히 볼 수 없고, 사는 형편이 어떤지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이곳에는 라후라는 고산족이 살고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가는 꼴이 되고 말 것 같다.
외형상으로는 비록 깊고 높은 산상에 거주한다는 것 이외에는 현대 문명의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현대 농기구도 보였고 인공위성 안테나도 보였다.
물론 그들의 복장이나 생활 형태 등 밖으로 드러난 몇몇 가지만 그들의 고유의 것으로 느껴졌을 뿐 산상에서 생활하는 고산족의 민족적 특성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관광객에게 단련을 받아서 많이 세련되어졌고 장사 속 같은 것이 보였다.
그러나 다른 관광지에서처럼 약아빠진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 저녁에 맥주와 콜라를 한 개씩 마시고 이름을 써놓고 표시해 두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맥주 2병을 더 마신 것으로 표시가 되어 있어서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씩 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영문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내가 마신 것만 지불하라기에 그렇게 했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얼마되지 않은 금액을 아무말 하지 말고 그냥 지불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침 식사 후 바로 하산하였다.
하산 길이 가파로운 데다가 넓고 두터운 가랑 잎들이 깔려 있어서 미끄러지기 쉬웠다.
내가 앞장서서 내려갔다. 영국 청년 존이 나에게 평소 등산을 많이 하느냐면서 나이를 묻기에 등산도 자주하고 69세라 했더니 놀라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내려가는 길 곳곳에 산불이 지나간 곳이 많아서 가이드에게 왜 이렇게 산에 불을 놓느냐고 물었더니 산짐승을 쫓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30여분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오니 시원한 폭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양인들이 폭포 밑으로 가서 물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즐거워하였다.
나도 탕 속으로 바지를 걷고 들어가서 더위를 식혔다.
폭포에서 계곡을 따라 30여분을 더 내려 가니 레프팅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나는 한국 여인 2명과 영국인 1명이랑 한 조가 되어 레프팅을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레프팅을 하는 것이지만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몸에 지녔던 전대와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 놓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물살이 완만하고 급격히 굴곡진 곳도 없는 쉬운 코스였다.
우리나라 동강에서 레프팅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한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옆 보트에 탄 사람들과 물장난을 하느라고 온 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 그렇거니 생각하였지만 갈아입을 옷을 가져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한 시간여 만에 레프팅이 끝난 곳에서 다시 뗏목으로 갈아탔다.
뗏목을 갈아타고 아주 완만한 물길을 따라 가는 곳의 좌우에 코끼리들이 풀을 뜯어먹거나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곳 사람들은 농사도 짓고 관광객을 상대로 사업도 하는 것 같다.
물길 양변의 식생들은 우리나라처럼 갈대와 잡목들이 이어져서 주변 경관을 보는 것이 심심찮게 느껴졌다.
얼마쯤 가다니 뱀이 납작한 돌 위에서 똬리를 튼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뗏목을 타고 40여분 내려간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 2시가 되어서 치앙마이로 돌아왔다.
국내에서도 해보지 못한 레프팅과 뗏목타기를 여기에 와서 해보다니.....
오늘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즐거운 기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건강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 드렸다.
저녁에는 미소네 식당에서 외국여행을 많이 다닌 젊은이를 만났다.
그로부터 남미에 대한 여행담을 즐겁게 들었다.
특히 볼리비아 소금 사막에서의 경험담은 흥미를 느끼게 했다.
'외국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남아 여행.5 -- 라오스 훼이싸이 (0) | 2009.04.10 |
---|---|
동남아 여행.4 -- 치앙마이 (0) | 2009.04.10 |
동남아 여행2 -- 타일랜드의 쑤코타이 (0) | 2009.04.10 |
동남아 여행1 -- 타일랜드의 방콕 (0) | 2009.04.10 |
미국 로키(7) - (귀로)뉴멕시코의 동서를 관통하다 (0) | 2008.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