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레에서 양곤으로
2009년 5월 8일 (금) 맑음 중간에 비
인레(Inle)에서 양곤(Yangon) 가는 날이다.
인레에서는 더 머물고 싶다. 미얀마에서의 일정을 좀 더 넉넉하게 잡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스럽다. 어저께 단 하루 일레 호수에 갔다가 온 것으로 인레를 다 보았다고 할 수도 없고 본 것도 사실은 겉핥기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에 인레에 다시 꼭 오리라.
인레는 미얀마에서 가장 큰 샨 주(Shan State)에 속해 있다.
샨 주는 산지(山地)가 많은 지역이다. 샨 주에는 주로 샨 족(族)이 구릉지 사이의 농경지를 경작하며 사는데 미얀마 전체 인구의 약 10분의 1을 차지하며 지금은 거의 미얀마화 되어서 문화적으로 미얀마에 더 가깝다.
그러나 이 인레 호수에는 인따 족이 인레 호수를 생활 근거지로 한다. 주로 인레 호수의 수상 가옥에서 살면서 고기를 잡고 농작물을 수경 재배하여 인근의 다른 소수민족들과 교류하면서 공생관계를 가진다고 한다. 다음에 인레에 또 오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레 호수에 있는 수상호텔에서 며칠 간 묵으면서 인따 족의 생활을 유심히 관찰하고 인근 소수민족들과 어울려 사는 모습을 차근히 지켜보았으면 좋겠다.
12시에 쉐낭에서 양곤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낭쉐에서 쉐낭을 거쳐 따웅지에 가는 생태우 버스가 10시에서부터 대기하고 있는데 손님이 차면 바로 떠난다고 한다. 그래서 9시 30분 경에 Gypsi Inn 주인이 직접 자기차로 서양사람 두 명과 나를 낭쉐 시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쉐낭에 가는 생태우가 시장 어귀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10시가 지나도록 생태우 버스를 타려는 손님은 집시 여관에서 온 우리 세 사람밖에 없었다. 10시30분경에 현지인 2명이 보태졌다. 최소한 20명은 타야 떠난다고 하였다. 11시가 되었는데도 차를 타려는 사람은 5명밖에 없었고 차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양 사람과 나는 생태우 버스 기사와 흥정하여 돈을 조금 더 주고 차를 출발시켜서 11시 30분경에 쉐낭에 도착하였다. .
따웅지에서 출발하여 양곤으로 가는 버스가 12시 20분 경에 쉐낭에 도착하였다
쉐낭을 출발하면서부터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수차례 산을 타고 넘었다. 오후 3시 무렵에 힘겹게 올라간 고개를 넘어 내려가는 길은 갈지자[之] 형태의 길이었고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곳은 천 길 낭떠러지였다. 버스가 아주 조심스레 천천히 산굽이굽이를 돌고 돌아 내려갔다. 노면이 고르지 못하여 차가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갔다. 마주 오는 차와 앞질러가는 작은 차들이 일으키는 먼지와 매연이 창틈으로 스며들어 코끝을 괴롭혔다. 고개 마루에서 산 아래까지 내려오는데 2시간 이상 소요된 것 같다. 단애에 붙어있는 갈지자 길을 내려와서도 깊은 골짜기로 계속 내려갔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산지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거기서부터 버스가 노면이 고르고 곧은 평지 길을 달렸다.
해가 질 무렵 짙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지더니 비바람이 몰려왔다. 삽시간에 사방이 캄캄해지고 굵은 빗방울이 유리창을 사정없이 때리고 천둥번개가 요란하였다. 우리가 탄 버스가 물에 잠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도로 옆 개울에는 엄청난 양의 흙탕물이 흘러내려가고 도로위로도 넘쳐흐르고 있었다. 남방 지역에서는 비가 내릴 때는 갑자기 장대비를 내리는 것 같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빗줄기도 잦아들고 이내 하늘에 별이 보였다. 미얀마의 우기는 6월부터 시작되었는데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에 우기가 5월로 당겨지고 있다고 한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눈을 감고 비몽사몽 상태로 있었는데 조수가 깨우면서 밖으로 나가라고 하였다. 어리둥절하여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선 곳의 뒤에 가서 섰더니, 조수가 나를 외국인을 조사하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페스포드를 훑어보고는 버스에 타라고 하였다. 그런데 내국인들에 대한 조사는 철저하였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몸을 수색하고, 또 소지품을 샅샅이 뒤졌다. 샨(Shan) 주의 지역에서는 반 정부활동을 하는 단체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샨 주에서 나오는 차에 대한 검문이 철저한 것 같았다.
인레에서 양곤 가는 길은 험하고 멀었다.
양곤(Yangon)
2009년 5월 9일(토) 맑음
8일 낮12시에 인레에서 버스를 타고 9일 새벽 6시에 양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버스를 18시간을 타고 왔다. 같이 오던 프랑스 사람은 짜익띠오(Kyaik Htee Yoe)에 가기 위해서 바고(Bago)에서 내린다고 하였는데 버스 조수가 알려주지 않아서 양곤까지 왔다. 그는 다시 바고로 되돌아가겠다면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나는 한강 게스트 하우스로 왔다.
양곤을 대강 돌아보고 미얀마 여행을 마감하기로 하였다..
밤새도록 버스를 타고 오느라고 잠도 편히 못 잤기 때문에 여관에서 쉬려고 했는데 잠도 안 오고 그냥 앉아 있기가 오히려 괴로운 것 같아서 아침나절에는 양곤 시내를 돌아보았다. 마침 전에 사업을 하느라고 미얀마에서 여러 해 동안 생활하면서 배운 미얀마 어를 잘 구사하는 분이 시내로 나가는 길을 동행해 주었다.
슐레 파고다
술레 파고다 동남쪽 교회가 보입니다.
술레 파고다 남쪽 바로 앞에 있는 기념탑
술레 파고다 서쪽 대로 뒤편에 형성된 시작바닥
시장 바닥.2
힌두교 사원
전기주레 새가 많이 앉아서
이슬람 모스크
중국인의 사당
중국인들의 사당
양곤 강 나룻터
강변의 모습
양곤 거리의 모습(1) - 멀리 술레 사원이 보인다.
양곤 거리의 모습(2)
양곤 거리의 모습(3)
양곤은 미얀마의 수도였는데 2005년에 미얀마의 수도를 양곤(Yangon)에서 북쪽으로 320km 떨어진 미얀마의 중앙에 가까운 핀마나(Pyinmanar)로 옮겼다. 핀마나로 수도를 이전한 뒤 핀마나의 명칭을 네피도(Nay Pyi Taw)로 바꿨다.
네피도는 만달레이 디비전(Mandalay Division)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곳으로, 2차 대전당시에는 일본군의 기지가 있었고, 그 후 중국 국민당 잔당과 아웅 산(Aung San) 장군의 독립투쟁 거점이었으며, 1960년대에는 미얀마 공산당의 투쟁거점이었을 정도로 군사적 요지로 알려져 있다. 수도를 네피도로 옮긴 이유에 대하여서는 국제 관계상의 문제, 혹은 국내 정치 사정 문제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다.
한편 네피도는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전략적으로는 항구도시인 양곤보다 수도로서 지리적 위치가 더 좋은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또한 여러 주(洲)의 경계에 접해 있어 화물 수송에 중추 지역 역할을 할 것으로도 기대한다. 하지만 아직도 양곤은 경제 문화 활동의 중추적 지위에 있는 미얀마 최대 도시이며, 또한 미얀마의 산업 및 상업 중심지이다.
택시를 타고 술레 사원 앞에 내려서 사원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얀마를 대표하는 대도시답게 대형 건물이 즐비하고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시장둘레에는 또 얼굴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마치 인종 전시장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인종 전시장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대형 시장 부근에는 중국인들의 불교 사원, 인도인들의 힌두교 사원, 무슬림의 모스크 그리고 기독교 교회들이 있다. 그리고 영국 식민시절에 지었을 것 같은 좀 낡은 대형건물들도 보였다. 술래 파고다와 시장을 돌아보았다. 시장 안에 나와 있는 식료품이나 생필품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빈부와 관습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양곤 강(Yangon River)을 보고 싶어서 강변로드로 갔더니 건물들이 앞을 막고 있었다. 그래서 건물 안쪽에 선착장 같은 것이 보여서 들어가서 보려고 했으나 길을 막으면서 출입을 못하게 하여 돌아 나왔다. 강을 보려면 위로 올라가라고 하였다. 피곤이 몰려와서 강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 때 어떤 젊은 여인이 다가서면서 “아저씨! 오빠!”하면서 내 옆으로 따라 붙었다. 분명 미안마 여성인데, 어떻게 “아저씨”, “오빠”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한국에 가 본 일이 있느냐’니까 ‘아니라’고 하였다. “묵고 있는 호텔이 어디이냐? 5$에 안마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그 여인의 청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자의 티를 내지 않으려고 평상복차림을 하고 나왔는데, 한국인 여행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린 것일까? 한국인들이 이곳 미얀마에 와서 그런 식으로 맛사지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인가? 호기심과 함께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숙소로 들어오다가 맥주 “미얀마” 한 병을 사가지고 와서 마셨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로서 한국인 사장과 미얀마 부인 그리고 미얀마 종업원들이 친절하다. 매 끼니마다 성찬이라 다음에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오후에는 숙소에서 푹 쉬었다.
2009년 5월 10일(일) 맑음
내일 방콕으로 가는 날이다. 그래서 오늘은 양곤 시내 한 번 더 돌아보고 쉐다곤 파고다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시장 구경을 하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더 돌아다니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보조마켓을 포기하고 쉐다곤으로 갔다.
쉐다곤 파고다는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치장한 미얀마 최대의 황금 탑이며 미얀마 불교의 상징물이 되고 있다. 쉐다곤 중앙답의 높이는 99(98?)m에 이르며 둘레는 423m이다. 중앙탑의 기단 부분에는 64개의 작은 불탑이 탑을 에워싸고 있다. 또 경내 북서쪽에는 무게가 23t이 되는 거대한 종(종')">鐘) 마하간다(Maha Gandha)가 있고, 또 불탑을 중심으로 72개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흩어져 있고, 이러한 불탑에는 수많은 불상들을 안치해 두었다.
양곤은 비가 많이 오면 침수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침수를 방지하기 위해 땅을 돋워 침수가 되지 않도록 높게 언덕을 만들어 놓고 탑을 세웠다고 한다.
쉐다곤
들어가보지 못하고 밖에서만 쳐다보고 와서 아쉬움이 큽니다.
쉐다곤에 갔을 때는 점심때가 지난 시간이었다. 그래서 절의 외관만 훑어보고서는 인근에 한국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돌아와서 사찰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한국 음식집을 찾아갔다. 지도상으로 보니 쉐다곤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 같아서 걸어서 찾아갔었다. 그런데 사실은 좀 먼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게다가 그 음식점은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었다. 허탈 허탈..........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서 쉐다곤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렇게 미안마에서 2주간 여행을 끝냈다.
오후에는 내일 방콕으로 돌아가서 귀국할 준비도 하고, 다음 여행지에 대한 것을 고민하면서 여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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