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코바(Moscow)
(10월 5일 오후)우리는 예약한 호스텔을 찾아서 체크인하고 짐을 풀었다.
L양은 발목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가고 K양과 나는 붉은 광장으로 찾아갔다. 붉은 광장으로 가는 길 부근에는 대형 공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어수선하고 통행 제한도 많았다. 여관에서 큰 길을 따라 한참 내려가니 스타브양스카야 공원(Stavyanskaya pl)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타브양스카야 공원(Stavyanskaya pl)
공원주변을 둘러보고 공원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붉은 광장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공원 아래쪽의 큰 길 옆으로 모스코바 강(Moscow River)이 흐른다.
모스코바강
우리는 강줄기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갔다. 강 양안에는 웅장하고 멋진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갔다. 우측 바로 위에 그렇게 보기를 목말라했던 그 크렘린(Kremlin) 궁전과 바실리 성당이 나타났다.
성 바실리 성당
크렘린 궁과 바실리 성당 그리고 붉은 광장의 저 그림들이 저 자리에서 지금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감격하여 바실리 성당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조금씩 뿌리던 비가 갑자기 세찬 빗줄기와 함께 광풍으로 돌변하였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내일을 기약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10월 6일)밤새도록 내리던 비가 아침에도 계속 내렸다. 오늘은 K, L양과 같이 크렘린 궁전을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내가 직접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다 보니 패키지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구경거리를 직접 찾아나서야 시행착오(불필요한 경비와 시간과 노력들)를 겪으면서 더 생생한 느낌을 맛볼 수가 있다. 그런데 순발력, 판단력 그리고 기동성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의지하여 따라다니다 보면, 도시의 많은 명소들을 쉽게 찾아다니면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나만이 맛볼 수 있는 것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모스코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그들과 동행하기로 하였으니 러시아에서의 여정은 수월하게 진행될 것 같다.
우리 일행은 붉은 광장으로 향하였다. 멀리서부터 높이 솟은 삼위일체 성당의 망루인 첨탑(트로이치카야탑)의 별이 방향타가 되어주었다. 스타브양스키야 공원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우측에 대형 건물인 국립백화점 굼(Gum)을 만난게 된다. 굼 백화점 앞 광장이 ‘붉은 광장’이다. 그러니까 크렘닌 궁과 굼 백화점 사이에 있는 광장이 ‘붉은 광장’이다.
붉은 광장
레닌의 묘
붉은 광장 북서쪽 끝 부분에 있는 카잔 성당
궂은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이 광장을 가득 매웠다. 굼 백화점 맞은 쪽의 크렘린 궁 전면의 중간에 레닌의 묘가 있다. 광장의 남쪽에는 바실리 성당이 양파모양의 탑 지붕들을 이고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바실리 성당은 보면 볼수록 화려하고 기이하고 신비롭다.
바실리 성당 바로 앞에 미닌(Minin)과 포자르스키(Pozharsky)의 동상이 있다. 1612년 의용군을 조직하여 모스코바를 점령한 폴란드 군을 물리친 시민 미닌과 포자르스키 공의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청동상이라 한다. 교회와 장군, 썩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의 정서와 동양의 조그만 나라의 한 구석에서 편협하게 살아온 나의 그것이 같을 수만은 없는 것이리라.
바실리 성당 바로 앞에 미닌(Minin)과 포자르스키(Pozharsky)의 동상이 있다
또 그 앞에 보잘 것 없는 작은 단이 하나 보였데 사람들이 그것을 사진기에 열심히 담고 있었다. 궁금하여 알아보았더니, 그 단에서 대농민 반란의 주모자를 처형한 곳이며, 어떤 때는 황제나 귀족이 올라서서 연설도 하던 곳이라 하였다.
대농민 반란의 주모자를 처형한 곳
붉은 광장을 거슬러 올라가서 크렘린 궁과 국립역사 박물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좌측 알렉산드로프 공원 입구에 있는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 일대를 알렉산드로프 공원이라 한다. 꺼지지 않는 불을 중앙에 두고 그 양 편의 작은 막사 안에 의장병이 각각 한명씩 그림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다. 그 모습도 특이하여 많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
우리는 매표소에 가서 크렘린 궁 입장권을 사려고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입장시간이 지났다면서 매표 직원들이 매표창구의 문을 모두 내려버렸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되돌아서야 했다. 러시아에서는 줄을 서서 아무리 오랜 시간 자기차례를 기다려도 업무시간이 지나면 매표직원이 매표창구를 내려버린다. 그러면 기다린 시간의 보람도 없이 발길을 돌려야 한다. 기차표를 살 때도 그랬다.
알렉산드로프 공원
매표소에서 나와 마네취나야(Manezhnaya) 광장으로 올라갔다.
역사박물관 앞에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의 청동 기마상이 있다. 주코프는 한미한 농가 출신으로 세계 제1차 대전 때 징병되어 제1차대전과 러시아 내전에도 참가하였고, 공산당 혁명 후에는 장교가 되었고, 2차대전 때는 독일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워 원수로 승진하고 전후에는 국방장관까지 되었다.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의 청동 기마상
마네취나야 광장에서 ‘부활의 문’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부활문을 통하여 다시 붉은 광장으로 나왔다. 부활의 문 앞에는 동전을 뒤로 던져 복을 기원하는 곳도 있고, 부활의 문 우측의 기념품 가게 앞에서는 중세십자군의 복장을 한 사람이 길거리에 나와 즉흥 연기를 하여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부활의 문
부활의 문 바로 앞에 동전을 뒤로 던져 넣는 곳
우리는 비도 그을 겸 굼(Gum) 국립백화점에 들어가서 통로 변에 설치해 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였다. 백화점은 3층인데 자연 채광시설을 갖춘 엄청난 큰 규모의 건물이다. 신혼부부들이 친구들과 함께 백화점 로비에서 여러 가지 이벤트를 행하거나 사진을 찍는 아름다운 모습들도 보였다.
굼 백화점 통로
굼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가를 찾아가다가 볼쇼이 극장을 보았다. 이곳이 그 유명한 러시아 볼쇼이 발레이단의 전용 극장이라 한다. 웅장한 볼쇼이 극장은 전면에 8개의 원주가 세워졌고 그 원주가 받든 박공 위에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아폴로의 청동상이 눈길을 끌었다. 이 볼쇼이 극장 부근에는 경찰관들을 유난히 많이 배치해 놓아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약간 진장되었다. 사실은 아무 일이 없었지만...
볼쇼이 극장
볼쇼이 극장 앞에 세워농은 마르크스의 석상
그리고 볼쇼이 극장 앞 광장 한 가운데 커다란 마르크스의 석상이 보였다. 대형 석재의 윗부분은 마르크스의 조각상이고 아래 부분에는 ‘모든 나라 노동자의 단결(ПPOAETAPИИ BCEX CTPAH COEΛЯЍTECbI)’이라는 내용의 글을 새겨놓았다. 아직도 구소련의 그늘이 러시아인들의 마음뿐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에 깊이 드리워져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전철을 타고 아르바트(Arpbat) 거리로 갔다. 비가 계속 내렸다. 비를 맞으면서 모스코바의 젊은이와 문화의 거리라는 약 2km의 아르바트 거리를 걸었다. 이 거리는 우리나라 인사동처럼 전통 공예품과 기념품 매장들 그리고 카페들이 많이 보였다. 거리의 화가들의 활동과 거리 공연 활동이 활발하다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아르바트 안내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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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트의 극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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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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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트 거리 상점에 진열된 기념품
아르바트 거리
이 거리에는 푸시킨의 신혼 때에 살던 집과 그 집의 길 맞은편에 그와 부인이 나란히 서 있는 동상이 있다. 푸시킨은 러시아 근대문학의 창시자로서 문학의 온갖 장르에 걸쳐 그 재능을 발휘했다. 32세 때 그보다 13살이나 어린 미모의 나탈리야 곤차로바와 결혼하였으나 나탈리야와 바람을 피운다는 상대방 남자와의 결투에서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푸시킨은 러시아 국민 사상과 감정을 훌륭히 표현한 러시아 국민 문학의 창시자이자 러시아 문학어의 창시자로 지금도 러시아 국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푸시킨의 신혼집 푸시킨 부부 동상
푸시킨의 동상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이번엔 러시아 문학가 아나톨리 리바코프가 바지주머니에 손을 질러 넣고 서 있는 형상의 동상이 길거리 중간에 있었다. 리바코프는 이 아르바트 거리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으며 그가 발표한 작품들 가운데는 이 거리를 배경으로 한 것들이 많다고 한다.
아나톨리 리바코프의 조각상
우리는 비를 피할 겸 상점에 들어가서 민예품을 둘러보기도 하였다. 이 거리에서는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만났다.
다음날(10월7일)은 국립역사박물관을 관람하였다.
크렘린 궁을 관람하려고 했더니 무기고만 관람이 허용되고 다른 곳은 관람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고 돌아 나와 역사박물관으로 갔다.
역사 박물관
선사시대의 마제석기에서 시대가 내려올수록 정제된 도구들 청동기 철기 등과 같은 보편적인 인류문명사의 모습들이 박물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다. 원시시대의 종교적인 삶을 볼 수도 있었으며, 중세 이후의 역사는 기독교사로 이루어졌다. 역대 황제들과 그들의 궁정생활은 대부분 그리스도 정교와 밀접한 관련지어진 것들이었다.
오후에는 성 바실리 성당 앞에서 City Tour하는 차를 탑승하였다. 그런데 이 시티투어 카는 우리가 이미 대부분 둘러본 곳에서만 빙빙 돌았다. 우리는 성 바실리 성당 앞으로 다시 돌아와서 내렸다.
씨티 투어하면서 모스코바 강 건너에서 바라본 크렘닌 궁
그리고 모스코바 다리를 건너 강변을 따라 모스코바 대학교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웅장한 모스코바대학교 건물은 모스코바의 또 다른 하나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그 앞에 서서 그 웅대함에 감탄사를 발할 뿐이었다.
모스코바대학교
오늘은 길을 상당이 많이 걸었다. 그래서 피곤하여 여관에서 좀 쉬었다가 오늘 밤차로 상페테르부르크로 갈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곧바로 여관으로 들어갔다.
모스코바 지하철
지하철 타려면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에스캎레이터를 타야한다(동구권 지하철은 다 그런 것 같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에스탈레이터를 타고 올라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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