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26. 꼴까따(3)

어르신네 2016. 2. 14. 22:13

26. 꼴까따(3)


 

2005년 2월16일 (수) 맑음

아내가 마더 데레사 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마침 파라곤 여관에 장기 투숙하면서 마더 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이가 안내하여 미사에도 참석하고 봉사활동을 담당하시는 수녀님을 만나보았다. 새벽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봉사활동하려 가는 사람들이 성당 뜰로 모여들었다. 빵과 짜이 한잔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모두 봉사활동장소로 이동하고 우리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고 마데 데레사 슈녀 안식처 앞에서


여관으로 돌아오면서 우리가 걸어온 길 중간에 소고기 판매점들이 많이 보여서 놀랐다. 인도는 소를 신성시하여 잡아먹지 않는다는데...... 그런데 이곳은 무슬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라서 그렇다고 하였다. 그리고 꼴까따에는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들이 많다고 한다.

여기서 만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추천해 주었지만 육식을 즐기지 않는 나와 아내는 별고 관심이 없었다.

아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마더 하우스를 걸어서 갔다가 온 것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여관에 들어오더니 오늘 계획하였던 Victoria Memorial 관람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서 오전에는 여관에서 쉬다가 New Market으로 갔다. 어저께 미얀마를 여행하고 인도로 왔다는 부산 아가씨과 함께 시장을 둘러보았다.

채소시장이 떠들썩하다. 시장에 들어서자 어떤 사람이 옆에 와 달라붙으면서 친절하게 시장 안내를 자청하고 나왔다.

‘이 자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군.’

어느 재소가게 앞에서 우리의 앞을 막고 채소들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우리에게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 내가 이상하게 생긴 채소 하나를 유심히 보니까 그것을 집어 나에게 주면서 자기가 들고 있는 바구니 속에 담으라고 한다. 내가 고개를 저었더니 나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사라고 졸라댄다. 

우리가 물건을 사지 않고 자꾸 구경만 하면서 다니니까 이번에는 어느 옷가게 앞에서 우리를 막고 서서 사라고 졸라댄다.

‘우리는 아이스 쇼핑을 나왔다. 물건 사지 않고 구경만 하겠다.’

고 하였으나 우리말은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안내자가 우리에게 서비스(?)한 시간이  많은 것 같고 또 불쌍한 생각도 들고 해서 5루피 동전을 손에 집어주었다. 이 녀석이 그것을 받아 챙기더니 인사는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그녀석이 사라지고 조금 있다가 또 다른 안내자가 달라붙는다. 이 녀석도 골목길을 앞장서서 상점에 진열해 놓은 상품들 하나하나를 가리키면서 소개하는데 어찌나 정성스럽고 지극한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가 그의 설명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이동을 하는데도 그는 관계치 않고 우리를 앞장서서 골목과 상점을 안내하고 또 우리가 가게 앞에서 조금 지체하면 상품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시달리지 않으려고 시장 밖으로 나왔다. 시장 밖에 나왔는데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붙는다. 정말로 끈질긴 녀석이다. 우리는 건너지 않아도 될 큰길을 건너서야 그 녀석을 떼어놓을 수 있었다.

우리는 큰길가에서 감자와 호박 파 등을 샀다.

시장에서 여관으로 돌아왔더니 0선생님부부가 점심을 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저녁 식사도 신세를 졌는데 오늘 점심식사도 맛있게 그리고 푸짐하게 먹었다.

우리 부부는 오후 3시에 다시 마더 하우스에 가서 봉사활동 지원자의 신상명세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봉사활동에 대한 안내를 받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한국학생 한명이 일주일간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한다고 송별 파티로 피자를 시켜서 먹는데 그들의 그런 모습이 대견해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아침에 사가지고 온 감자를 삶아서 모두 함께 먹었다.

0선생님은 여행을 많이 하신 분이다. 방학 때만 되면  해외배낭여행을 하였다고 한다, 서양의 배낭여행자 가운데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었는데, 나이 많은 한국 배낭여행자로는 우리를 처음 보았다고 하면서, 우리부부를 보고 많이 놀랐다고 하였다. 더 늙기 전에 좀 더 많은 여행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Paragon에는 각국 여행객들이 많이 들어 있다. 투숙객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여행객으로 단순히 묵었다가 가는 사람들과 마더하우스에 봉사하러오는 사람들로 나누어볼 수 있다.  마더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도 장기 투숙하면서 봉사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또 단기 투숙하면서 장기 봉사 활동하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단기간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서양 여행객이나 일본 여행객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여관에서 종일 기타나 피리 혹은 북(?)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서양사람들이나 일본인들의 여행은 여유가 있어보였다. 서두르지 않고 더운 한낮에는 여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기울고 선선해지면 Bar같은 곳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고, 늦은 밤에 여관으로 돌아와  노니다가  잠자리에 드는 것 같다.




2005.2.17(목) 맑음 새벽 체조를 마치고 샤워를 하였다.

오늘은 강 선생님 내외가 6시 30경에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다고 하여

우리도 일찍 일어나 떠나는 것을 전송하였다. 어쩐지 백년 지기를 떠나보내는 심정이다.

서로 만나서 알게 된 지 단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람이 소탈하고 정감이 있는 분이였다.

게다가 나를 선배로 깍듯이 대해 주는 것이 너무 송구했다.

 

사모님께서는 Paragon에 묵고 있는 봉사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장만하여 베푸는 모습이 무척 좋아보였다.

김치를 만들어서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2층에 묵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도 나누어 먹는 인정이 두터운 분이었다.


강선생님 부부가 떠나면 2층 분위기가 좀 떨어질 것 같다.

강선생님 부부가 비행장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탈 무렵

파라곤에 있던 한국사람들은 다 나와서 짐을 날라주기도 하고 또 환송을 하였다.

 

 

오늘은 아침식사로 어저께 먹다가 남은 찐 감자를 먹었다.

다질링을 갔다가 꼴까따로 돌아오는 날짜를 잘못 계산하여

예매해 놓은 기차표를 바꿔야 했다.

 

Tourist Railway Booking Office를 다시 찾아가서

우리가 가려는 시간대의 21일자 뉴잘페구리 행 SL표를 신청하였으나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Third AC표를 샀다.

예매소를 찾아서 걸어가는데 날씨가 덥고 왼쪽 다리 무릎관절 부위의 힘줄이 당겼다.

이상이 온 것 같다. 귀국하여 병원 진찰과 치료를 받아야 하겠다.

 

11시에 체크아웃하고 짐을 프런트에 맡겼다.

쉬어야 할 방이 없어서 파라곤 여관의 로비와 여관의 뜰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너무 따분하였다.

오전은 기차표 바꾸느라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럭저럭 보냈지만,

시알다(Sealdah) 역에서 출발하는 밤 기차를 타러 갈 때까지

오후 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마땅치 않았다.

 

오늘 점심식사는 한국음식을 하는 식당이 또 다른 곳에 있다고 하여

그리로 가서 칼국수와 군만두 잡채덥밥을 시켜 먹었는데

흉내는 내느라고 했는데 영 맛이 살아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 혼자 시장을 돌아보았다. 술을 파는 가게가 보이기에 ‘럼’주 한 병을 샀다.

 

* 시장 골목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접근해왔다.

 “어디서 왔느냐?”.

 “한국”,

이녀석이 갑자기 악수를 청하면서

 “아! 코리아! 서울에 자기와 거래하는 ‘장’이라는 친구가 있다.”

이 녀석 한국말도 제법이다.

한국말도 조금 할 수 있고 한국인 친구도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서 나의 호감을 사려하는 것 같았다.

그가 한국말을 하는 소리를 듣고 반가웠다. 한편으로는 경계심도 생겼다.

 

바람잡이 같이 또 한 사람이 붙으면서

 “옆의 이 친구에게 큰 상점이 있다. 한번 구경하고 가라. 내가 안내하겠다.”

 “그러냐? 그게 무슨 가게냐?”

하고 묻자 다짜고짜로 내 소매를 끈다. 나는 직감이 좋지 않아서

 “친구가 저기서 기다린다. 그리로 가야한다.”

 “바로 여기다. 잠간이면 된다.”

고 하면서 어느 가게 앞에서 섰다.

가게는 공간이 넓고 코너별로 무슬림 복장을 한 상인들이 하나씩 붙어서

각기 다른 상품들을 진열해 놓았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골목에 위치한 가게인데

다른 곳에 비해 한산하였다.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상품이 주로 기념품과 관련이 있는 보석, 카펫 등 주로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품을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가게 같았다.

가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물품이 진열된 여기저기에서 점원들인지 주인들인지 물건을 하나씩 들고 내 앞으로 벌 때처럼 둘러서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어리둥절하고 당황하였다. 그리고 사방이 내가 나갈 통로가 차단된 것 같았다.

 “나는 물건을 사러 온 것이 아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또 조금 마음도 언짢아서 그냥 돌아서려고 하니까 가게 주인이라는 녀석이 이층을 가리키면서 짜이 한잔 하고 가란다. 더 이상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일을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주인 친구란 녀석이 자꾸 소매를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였다.

 “미안하다. 일행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리로 가야겠다. 그리고 다음에 오겠다.”

도망치다시피 그 가게 앞에서 뒤로 빠져나왔다.

 

가게 주인이란 사람이 나에게 친절을 베푼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장사해 먹으려고 한 것인지,

가게까지 데리고 와서 내가 물건을 사면 구전을 뜯어먹으려 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유인하여 독약을 먹이려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여하간 사람이 의심을 하면 끝이 없는 법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그들의 눈빛을 보아 아주 순수한 사람들 같았다.

도망치다시피 그들로부터 벗어날 때까지 그들이 나에게 보낸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웃음 띤 눈빛을 끝까지 나에게 보내주었다.

내가 지레 겁을 먹고 그들을 의심하고 그들을 나쁜 사람일 것이라고 속단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들은 이국인에게 베푼 친절이었는데 속 좁은 내가 그것을 읽지 못하고

못난 행동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파라곤 여관으로 돌아와서 한국 젊은이들과 오늘 낮에 뉴 마켓(조릉기에서 BBD 바그쪽으로 넘어가는 쪼릉기 로드)에서 겪었던 위의 일을 얘기했다.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 가끔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바가지를 쓰는 경우는 있지만 아주 큰 낭패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조심하고 그런 곳에는 가급적 끌려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 중에서 한 사람은 2층으로 따라 올라가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하였다.

‘약을 탄 차를 받아 마실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은 ‘상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가게에서는 그런 짓까지는 하지않을 것이다’라고도 했다.

 

저5시50분에 시알다(Sealdah) 역으로 갔다.

인도 꼴까따에는 인구가 많다는 얘기는 기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시알다 역에는 앞으로 걸어나가기 곤란할 정도로 인파의 물결을 이룬다.

차가 씨알다역으로 들어오거나 떠날 때는 내리고 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드는지

사람들 개개인이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덩어리가 뭉쳐져서 몰려오고 몰려가는 것 같았다.

 

이동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집시로 보이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서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대열의 선두에서 들고 가는 깃대를 따라 무리를 지어 좇아가고 있었는데,

좀 특이한 차림새를 한 것 같기도 하다.

앞에 가는 사람들은 짐과 더불어 커다란 북을 둘러매고 있었으며,

그 뒤를 이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살림도구를 지고이고 또 손에 들고서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열차가 플랫폼에 도착하자 서민들이 타는 열차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서로 미리 타려고 하는 사람들이 차가 정차하기도 전에 출입구에 매달리고,

차가 정차하면 서로 미리 탈려고 밀치고 비집고 들어가려고 몸부림을 친다.

또 사람들이 다 타지도 않았는데 차가 출발하는 경우에는

뒤 미쳐 못 탄 사람은 출발하여 움직이고 있는 열차에 아슬아슬하게 뛰어오르기도 하였다.

 

우리가 타야할 기차시간이 많이 남아서 플랫폼의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어린 여자아이가 와서 손을 내민다. 초콜릿을 하나 주었다.

초콜릿을 다 먹고는 또 내 팔을 흔든다. 그냥 보면서 웃고 말았다.

조금 있다가 이번에는 허리를 콕콕 찌른다.

조금 물러앉아서 그를 외면했더니 내 손을 잡아당긴다.

깜짝 놀라 획 뿌리쳤다. 아 그런데 이 맹랑한 녀석.......... 바닥에 있는 쓰레기를 집어서 나의 얼굴에 휙 던지고는 저리로 달아나 버렸다.

 

어린 녀석이 저렇게 자라니 커서는 어떤 사람이 될지 걱정이 된다.

어린 아이들이 1루피만 달라고 졸라대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때로는 악마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진드기 같기도 하고 하여간 찰거머리 같다.

 

기다리던 열차가 플랫폼에 도착하여 드디어 7시40분에 뉴 잘페구리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BBD바그 지역 Tram Terminus 옆 광장에서 노인들이 모여 대모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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