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꼴까따(2)
2005.2.15(화)맑음
아침밥을 한국음식점에서 사먹고 Continent G.H에서 파라곤(Paragon Hotel)으로 숙소를 옮겼다. 파라곤에서 대구의 대학 강사를 한다는 여인을 만났는데 다질링(Darjeeling)에서 오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다질링 여행이 좋았다면서 우리에게 적극 추천하였다. 그리고 다질링을 갔다가 올 때까지의 노정을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예정에 없던 다질링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그녀는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델리로 가는 기차표를 사고 우리는 다질링 가기위하여 자펠구리까지 가는 표를 구하기 위하여 Tourist Railway Booking Office에 갔다.
예전에 들은 바에 의하여 꼴까따라는 도시는 거지 천국이고 지저분하고 형편없는 도시로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과장되고 잘못된 정보였다. 지하철은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수준급이었다. 차량이나 지하철역의 관리나 운영상태가 괜찮았다. 버스를 비롯한 지상 교통망도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우리가 보기에는 시민들이 아주 무질서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그 흐름을 잘 이용하여 별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떤 복잡한 사거리에서는 교통순경의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또 시민들도 교통순경의 지시에 잘 협조하였다. 인도인들의 질서의식이 점점 잡혀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인도의 높은 시민의식에 의하여 인도가 더 좋은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다.
파라곤 호텔에는 각국 여행객들이 많았다. 그리고 한국여행객들과 일본여행객들도 많았다. 마침 서울 모 고등학교 선생님 부부가 투숙하여 한국 젊은이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젊은이들 가운데는 Mother House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과 또 봉사활동을 하러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부부는 다질링에 갔다가 와서 단 며칠간이라도 봉사활동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일 아침 아내는 봉사활동을 가는 젊은이들을 따라 가서 봉사활동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였다.
아내가 기차표 예매를 하러갔던 것이 힘들었는지 오늘은 여관에서 쉬고 싶어 하였다. 오늘 오후엔 인도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했으나, 아내가 피곤해하고 주위의 사람들이 인도박물관 관리가 엉망이라고 하여 관람을 포기하고 여관에서 쉬었다.
저녁에 우리는 슈더 스트리트에서 북쪽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 보았다. 골목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음식을 사 먹고 있었다. 큰 길을 건너에는 제법 큰 시장이 있었다. 아내가 과일 가격을 물어보았다. 터무니없이 비싼 것 같았다. 그래서 사지 않고 돌아왔는데 아내는 과일을 사지 않은 것이 무척 서운한 모양이다.
아내를 숙소에 들여보내고 나는 인터넷 방으로 가서 아들과 친지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그동안 쌓여있는 메일을 정리하였다. 여관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는 선생님부부가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김치 비빔밥을 만들어 한국인과 일본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이아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도 그곳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인도에 온지도 벌써 20일이 지났다. 머릿속에 인도에 대해 뚜렷이 떠오르는 게 없다. 인도의 내면을 보아야겠다. 인도의 표피만 보고는 인도를 여행 한 보람이 없다. 인도를 바로 보도록 하자. 인도인들의 질박한 삶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과의 만남이다. 그러나 그들과의 만남이 쉽지 않다. 우선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
꼴까따의 거리는 그래도 생동감이 넘친다. 뒷골목의 어두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어느 나라의 도시에서나 있는 현상이다. 단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길거리를 깨끗이 하고자 하는 시민정신이 살아나고 당국의 시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꼴까따에서는 힌두교도들의 가정, 시장 곳곳과 중요지점에 여신 두르가(Durga)를 모셔놓았다. 여신 두르가가 있는 곳에는 힌두교도들이 아주 경건한 모습으로 꽃을 바치거나 경배를 하고 지나간다. 14일 식물원에 갔을 때 자동차에 두르가 상을 싣고 후글리 강 쪽으로 가는 행렬이 보였다. 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두르가를 후글리 강물에 담그면서 기도도 하고 환성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여신 두르가는 이곳 l여성들이 흠모하는 여인상인 것 같다. 지성과 덕이 보이고 그 자태가 아주 매혹적이다. 신라여성들이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 뒷 벽면에 새겨놓은 아름다운 관음보살상에 대하여 흠모하고 그 모습을 닮기를 바랐던 것처럼, 여신 두르가는 이곳 여인들의 이상적인 여인상으로서 그 덕을 흠모하고 기리고 추앙하는 대상이 되었으리라. 그리고 인도인들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여신 두르가가로 하여금 더 많은 미덕을 지닌 여신으로 발전시키고 기도드리면서, 아름답고 높은 가치관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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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사람이 슈더 스트리트의 골목길 한쪽에서 만드는 한국음식을 사먹고, Continent G.H에서 파라곤(Paragon Hotel)으로 숙소를 옮겼다.
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배낭여행을 온 처지에 등 붙이고 잠잘 수 있는 곳이면 어떠하랴 하고 그냥 이곳에서 묵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파라곤 여관은 꼭 벌집처럼 구석구석에 방들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 여관에는 서양사람과 일본인들도 많았지만 한국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Paragon에는 각국 여행객들이 많이 들어 있다.
투숙객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여행객으로 단순히 묵었다가 가는 사람들과 마더하우스에 봉사하러오는 사람들이다.
마더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도 장기 투숙하면서 봉사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장기 봉사 활동하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단기간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서양 여행객이나 일본 여행객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여관에서 종일 기타나
피리 혹은 북(?)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서양사람들이나 일본인들의 여행은 여유가 있어보였다.
서두르지 않고 한낮에 더울 때는 여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기울고 선선해지면 어디론가 시내를 다녀와서
저녁 식사 후 Bar같은 곳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고,
늦은 밤에 여관으로 돌아와 노니다가 잠자리에 드는 것 같다.
짐을 정리해놓고 로비로 나가니까 어저께 미얀마를 여행하고 인도로 왔다는
부산 아가씨와 함께 시장(New Market)을 둘러보았다. 채소시장이 떠들썩하다.
시장에 들어서자 어떤 사람이 옆에 와 달라붙으면서 친절하게 시장 안내를 자청하고 나왔다.
‘이 자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군.’
우리가 물건은 사지 않고 돌아다니기만 하니까
어느 가게 앞에서 우리의 앞을 막고 그 가게의 채소들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설명을 하는데
내가 이상하게 생긴 채소 하나를 유심히 보니까
그것을 집어 나에게 주면서 열심히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을 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바구니 속에 담으라고 한다.
내가 고개를 흔들었더니 나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사라고 졸라댄다.
주인이 옆에서 우리와 함께 안내자의 얼굴만 멀뚱하게 보다가
우리에게 설명을 하려고 들면 안내자가 주인 말을 거들면서 또 많은 말을 해대는 것이었다.
우리가 물건을 사지 않고 자꾸 구경만 하면서 다니니까
이번에는 어느 옷가게 앞에서 우리를 막고 서서 사라고 졸라댄다.
‘우리는 아이스 쇼핑을 나왔다. 물건 사지 않고 구경만 하겠다.’ 고 하였으나
우리말은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안내자가 우리에게 서비스(?)한 시간이 많은 것 같고
또 불쌍한 생각도 들고 해서 5루피 동전을 손에 집어주었다.
이 녀석이 그것을 받아 챙기더니 인사는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그녀석이 사라지고 조금 있다가 또 다른 안내자가 달라붙는다.
이 녀석도 골목길을 앞장서서 상점에 진열해 놓은 상품들 하나하나를 가리키면서 소개하는데
어찌나 정성스럽고 지극한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가 그의 설명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꾸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는데도
그는 관계치 않고 우리를 앞장서서 골목과 상점을 안내하고
또 우리가 가게 앞에서 조금 지체하면 상품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시달리지 않으려고 시장 밖으로 나왔다.
시장 밖에 나왔는데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붙는다. 정말로 끈질긴 녀석이다.
우리는 건너지 않아도 될 큰길을 건너서야 그 녀석을 떼어놓을 수 있었다.
우리는 큰길가에서 감자와 호박 파 등을 샀다.
시장에서 여관으로 돌아오는데 트럭에 커다란 인형(?-처음에 나는 인형인줄 알았는데
그것은 여신 Durga였음)같은 것을 싣고 가는데
여러 사람이 그것을 에워싸고 쪼그려 앉아서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꼴까따에서 길거리나 가정의 마당에 여신 두르가(Durga)를 모신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두르가를 자동차나 수례 혹은 인력거에 싣고 후글리 강으로 가는 것을 볼 수도 있다.
데쎄라 기간-<9월~10월 사이. 소머리를 한 악마 머히샤쑤르(Mahishasura)를 물리친 두르가의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인데 벵골지역에서는 이 행사를 두르가 뿌자라고 함>-에는 수많은 두르가 상이 물에 잠기는 성대한 행사가 있다고 한다.
14일 식물원에 갔을 때 자동차에 두르가 상을 모시고 후글리 강 쪽으로 가는 행렬이 보였다.
또 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두르가를 후글리 강물에 담그면서 기도도 하고
환성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여신 두르가(Durga)
여신 두르가는 인도여성들이 지향하는 여인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주 매혹적이면서도 지성와 덕성이 깃들어 보이고 그 자태가 아주 곱다.
신라여성들이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 뒷 벽면에 새겨놓은 아름다운 관음보살상을 보고 그를 흠모하면서 보살님의 덕과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닮기를 소원했던 것처럼,
두르가는 인도여인들의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설정된 여신으로서,
그 덕을 흠모하고 기리고 추앙하는 대상이 된 것이리라.
그리고 인도인들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여신 두르가가로 하여금
더 많은 미덕을 지닌 여신으로 발전시키면서 기도드리면서,
아름답고 높은 가치관을 지니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힌두교도들의 가정과 시장 곳곳에 또 중요지점에는 두르가를 모셔놓았다.
여신 두르가가 있는 곳에는 힌두교도들이 아주 경건한 모습으로
꽃을 바치거나 경배를 하고 지나간다.
인도인들은 삶 자체가 바로 신앙생활인 것 같으며,
그들이 신에게 드리는 정성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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