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꼴까따(7)
<Victoria Memorial>
2005년 2월 24일( ) 맑음 아침이면 괴성에 가까운 노랫가락을 읊어대는 일본 청년이 있다.
옆방의 서양 젊은이들은 그 일본 젊은이의 괴성에 가까운 노래 소리를 듣고 지나가면서 아주 흥겹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아침인사를 건넨다. 그 서양 젊은이의 진심을 멀까? 나는 도무지 즐겁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 수양이 덜 된 탓인가? 그 노래가 괴롭게 느껴진다. 나의 문화수준이 낮아서일까? 아니면 젊음에 대한 나의 심술인가?
오늘 귀국하는 한국 젊은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한다. 오늘 귀국하는 학생은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는 고향이 부산인 젊은이다. 그는 나의 방까지 찾아와서 귀국한다고 인사하려 왔었다. 아내가 지은 밥으로 귀국하는 젊은이와 그 시간에 일어난 다른 젊은이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였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대견하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빅토리아 메모리엄에 갈 예정이었으나 어저께 약속한 카드이용 건을 해결해주기 위하여 은행 문을 여는 11시까지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내가 몸이 부편한지 안색이 좋지 않다. 어저께 보육시설에서 한 아이에게 시달림을 받은 탓으로 허리가 아프고 기운이 없다고 하였다. 씨티뱅크에서 돈을 찾아주고 Victoria Memorial까지 갔다. 아내는 발걸음이 무겁다면서 들어가기 싫으니 나 혼자만 구경하고 오라고 하여 할 수 없이 아내는 야자수 나무그늘 밑 잔디에서 앉아 쉬고 나 혼자만 들어갔다.
Victoria Memorial은 Maidan의 끝 부분의 광대한 지역의 한 가운데에 우뚝 세워졌다. 멀리서 보아도 건물의 장대함과 호화로움이 배어난다. 넓은 뜰 한 가운데 우뚝 세워진 Victoria Memorial이 풍기는 귀족적이며 사치의 극을 느끼게 하는 건물 입구 중앙에 Victoria 여왕의 동상이 까마귀의 배설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내국인에게는 10루피만 받으면서 외국인에게는 150루피를 받는다.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 있는 빅토리아 여왕 동상>
입구 홀(Hall)에는 영국 통치시대의 총과 칼, 동상들 그리고 인도 토후들의 풍속도가 전시되었다.
우측에는 Royal Gallery에는 빅토리아 시대에 인도의 풍경과 건물들을 그린 대형 그림들이 전시되었다.
좌측 홀에 있는 Gallery는 인도인들의 반란, 군사 충돌 등 많은 그림과 인도인들의 삶의 모습이 전시되었다. 거기에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인도인들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읽을 수 있었다.
중앙홀은 Main Hall인데 가장 화려한 대리석으로 조각해 놓은 영국 왕실 문양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조각들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었다. 중앙에 대리석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Victoria 여왕의 立像을 조각하여 세웠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빅토리아 여왕조각상 위에 있는 높은 천장은 이 건물의 중앙 돔인데, 그 높은 중앙의 돔에 그려놓은 화려한 문양과 밝은 색상은 아름다운 천상의 세계를 그려놓은 듯했다.
그리고 여왕 입상이 있는 중앙 홀의 원형 벽면에는 식민지 시대의 영국 귀족들의 유물과 영국 왕실의 궁정생활의 여러 가지 호화로운 모습들을 그린 대형 그림들을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중앙 홀 후면에는 인도 전통미를 담은 수채화를 전시해 놓았는데 일정기간의 특별 전시회 같았다. 인도인들의 일상적인 모습과 좀 독특한 인도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었다.
2층 좌측 홀에는 인도 독립운동 역사관이었다. 간디, 네루 그리고 인도의 시인 타골을 비롯한 인도 지도자들의 삶의 각종 모습과 그들이 남김 족적들은 전시해 놓았다. 또 인도인들의 각종 삶의 모습을 담은 그림과 풍속도도 전시해 놓은 것 같았다.
인도사(印度史)는 외침으로 시달려 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BC2000년경 Aryan 족의 침략을 필두로 AD1000년대에는 이슬람 세력이 밀려왔고 17세기에는 포르투갈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제국의 침략을 받았으며 결국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Victoria Memorial은 영국식민지 역사의 산물이다.
Victoria Memorial은 근세 영국의 지배를 받아온 식민지 흔적들을 극명하게 그리고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우리 한민족이 일제로부터 36년간 식민지 통치를 받았던 치욕의 역사를 가졌던 아픔을 잊을 수 없는 것처럼, 17세기부터 서구 열강들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고 약탈을 당하다가, 결국에는 200년 가까운 세월을 영국의 지배를 받은 치욕의 역사를 인도인들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숨기고 덜어내고 그 흔적을 없애기 보다는 그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니까 그들의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아픈 과거사를 바로 알고 다시는 이런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취지로 영국 식민지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여 놓고, 그것을 후세들에게 산교육자료로 활용하려는 것일까?
인도인 관람객들이 많았다. 그들의 역사의식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는 박물관의 2층 한 모퉁이에 인도 독립운동과 관련한 근대사의 자료를 전시해 놓은 인도의 것이 영국 Victoria 여왕의 것보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에 대하여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Victoria Memorial을 나와서 건물 바깥 모양을 살피고 있는데, 어떤 중년의 인도인이 다가오면서
‘어디서 왔느냐?’,‘한국에서’,
‘다음 행선지가 어디냐?’, ‘바라나시’
그 인도인은 자기의 고향이 바라나시라면서 나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그러고 나서 알아들을 수 없는 수다를 떨더니
‘저기 야자수 그늘 밑 잔디에 앉아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자.’
‘안돼,아내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야해.’
라고 하면서 그냥 가려고 하니까 이 녀석이 본색을 드러냈다.
‘바라나시에 가야할 차비가 없다. 차비를 좀 달라.’, ‘노 모니.’
‘밥을 못 먹었다. 50루피만 달라.’, ‘노 모니.’
‘10루피만!’, ‘노!’
매몰차게 말하고 그로부터 벗어나 아내가 있는 쪽으로 좀 빠른 걸음으로 가려고 하는데 나의 소매를 붙잡으면서 ‘10루피만!’하고 애걸을 하였다.
키가 크고 얼굴이 길쭉한 골격이 큰 녀석이다. 겁도 좀 났지만 이 녀석한테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내 작은 눈을 크게 뜨고
‘저리 비켜! 나는 아내에게 빨리 가보아야 해!’
했더니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처량해 보였다. 10루피를 꺼내서 줄까 하다가 저놈이 사기성이 있고, 잔디로 유인해서 약물을 탄 음료수를 먹이려했을지도 모를 놈일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그냥 떨쳐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매몰차게 뒤로 돌아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갔다. 한참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어깨를 꺾고 나무 밑에 가서 서 있는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면서도 그 인도인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정말로 바라나시에 가기위해서 돈이 필요한 사람?', '일상적으로 돈을 구걸하는 사람?'
'사기를 치고 돈을 얻는 사람?', '사람을 유인해서 돈을 강탈하는 사람?' ..........................
<아닐꺼야, 그의 눈에 선한 빛이 보였는걸.....
그런데 아니야, 내 소매를 끌어당길 때의 그 눈빛은 좀 이상했어.
나무 밑에 가서 고개를 꺾고 서 있는 모습은 너무 처량해 보였어....................
<빅토리아 메모리얼>
아내와 함께 택시를 타고 여관으로 돌아오다가 초우면과 수프를 시켜 먹었다. 아내가 몸이 무겁다고 하여 오후 내내 숙소에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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