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36. 꼴까따(8)

어르신네 2016. 2. 19. 17:15

36. 꼴까따(8)

<꼴까따의 하루 일과>


2005년 2월 26일 (토) 맑음

아침 5시 이슬람교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확성기의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간단히 체조를 하고 아침 미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Mather House로 갔다.

가는 길 앞쪽에는 우리와 같은 여관에 들어 있는 서양 사람들이 앞장서서 갔다. 나도 그들 뒤를 바짝 좇아갔다. 성당 안은 벌써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뒤로 가서 앉았다.

미사의 양식은 우리나라와 대동소이한데 영어로 하는 집전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여 답답하였다. 그래서 양식에 의한 기도문은 우리말로 읊었다. 서양인과 동양인으로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조금 보였다.

 

미사를 마치고 내려오니 벌써 빵과 짜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짜이를 두 잔이나 들이키고 있노라니 프랑스 여인이 나에게 다가와서 KaliGath로 가느냐고 하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같이 가자고 하여 그 프랑스 여인과 우리는 일행이 되었다. 프랑스 여인은 나를 놓치지 않으려는지 바짝 붙어서 따라왔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프랑스어를 잘 익혀 두었더라면 이 아름다운 프랑스여인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행할 수 있을 터인데 서로 얼굴만 마주 보고 한번씩 웃음을 보낼 뿐 대화가 없이 걷기만 하였다. “Bonjour!"라는 말이 생각나서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하였더니 나의 부정확한 발음을 고쳐주면서 아주 밝게 웃음을 보냈다. 그녀는 휴식시간에도 서양 사람들 끼리 모여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내 옆으로 와서 음식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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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병실이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출입구에 있던 환자가 안쪽으로 자리 이동하였고 새로 들어온 환자가 있었다. 걸음걸이가 온전치 못한 사람, 밥 먹는 것도 힘겨워 하는 환자 등등 자기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힘겹게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보기에도 딱하다. 그런 환자들을 도와주려고 하면 그러지 말라고 한다. 보기가 딱하더라도 그냥 두라고 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병세 회복이 빠르다고 한다.

 

오랜 기간 봉사활동을 하는 서양인 몇몇은 환자에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존경스러웠다.

우리의 젊은이들도 아주 적극적이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아침 8시에 시작하여 10시30분에 휴식을 갖는다. 휴식시간에 먹는 간식은 정말로 맛이 있었다.

간식시간은 병실에서 얼굴만 익혔던 봉사자들끼리 대화를 하면서 서로 사귀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동서양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한데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구를 만드는 시간이 된다.

그런데 내 옆에 앉은 프랑스 여인은 영어가 잘 안 되는지 묻는 말에 웃음만 보낼 뿐 묵묵부답이었다. 벙어리는 아닌데....

 

간식시간이 끝나고 환자들의 점식식사를 도왔다.

밥을 잘 먹는 사람도 있지만 밥 먹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밥이 반은 입으로 반은 밖으로 떨어진다. 아예 밥을 먹여주어야 하는 환자도 여럿이다. 보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먹기조차 힘겨운 이들......... 이 환자들의 힘든 삶이 가슴에 와 꽂힌다. 내가 진심으로 이 일에 참가하고 있는지? 내가 저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함께 하고 있는지? 봉사활동(?)한답시고 주접을 떨고 있는 내가 저들과 다를 게 무엇인가. 저들의 자리가 내 자리일 수도 있지 않은가............

 

점심식사 뒷마무리를 하고 돌아올 때는 전철을 이용하였다. 이탈리아 사람 Giuseppe이란 사람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돌아왔다. 함께 사진도 찍고 주소도 나눠가졌다.


여관에 돌아오니 아내는 벌써 돌아와 있었다. 소화가 잘 안 된다면서 점심식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귀국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일은 봉사활동을 그만두고 좀 쉬는 게 좋겠다고 하였더니 상태를 보아서 결정하겠다고 한다.

 

오후에 뉴 마겟에 갔었다.

물이라도 따뜻하게 끊여 먹으려고 전기 코일을 사려 Chowringhee지역과 BBD가 맞닿은 지역을 30여분 헤매고 다녔는데도 사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꼴까따가 인구가 많기로도 유명하지만 시장도 크고 시장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물건도 다양하여 저렴한 가격의 물건에서부터 고급의 상품들이 시장을 가득 매웠다.

고급 store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의례 경비가 문간을 지키고 있고 그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부유한 인도인이나 서양 사람들로 보였다. 고급 store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 때깔이 벌써 다르고, 손님을 맞이하는 점원은 무슨 칙사라도 맞이하는 듯이 아주 정중하게 안내하고 물건을 소개하고 안내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지난 17일 Chowringhee의 거리에서 어떤 인도인이 자기 가게로 안내하겠다고 하면서 나를 끌고 갔던 곳을 찾아 가보았다. 물건을 나에게 내밀면서 사라고 하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았는데 손님이 없어서 한산하였다. 그들은 나를 보고도 못 알아본 것인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저녁에 혁대를 사려고 돌아다니다가 여관으로 들어오는데 인력거꾼 한 명이 다가오면서 자기의 수례를 타면 '아름다운 아가씨(beatiful girl)'에게 대려다 주겠다고 은밀하게 말하면서 인력거를 타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그를 쳐다보았더니, 갑자기 인력거 손잡이를 내려놓고는 나의 소매를 끌고 인력거에 오르라고 재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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