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38. 꼴까따(10)

어르신네 2016. 2. 19. 17:27

38. 꼴까따(10)


2005년 3월 1일 (화) 맑음

아침에 잠에서 일어나 하늘을 보니 잔뜩 흐렸다. 새벽 미사에 참석하려고 밖에 나갔더니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도 나 혼자 부지런히 걸었다. 그런데 서양 여인 한명이 내 뒤에서 바짝 따라 붙었다. 파라곤에서 자주 보았던 얼굴이라 눈인사를 하였다.  그녀는 늦었다면서 뛰기 시작하여 나도 함께 따라 뛰었다. 그녀는 젊고 다리가 길어서 빨리 달렸다. 나는 그녀를 따라서 헐레벌떡거리면서 좇아가느라고 땀이 흠뻑 배어 올랐다. 한참 뛰어가던 서양여인이 뒤를 돌아서 나를 보더니 걸음을 멈추면서 걸어가도 시간 안에 들어갈 것 같다면서 나보고 뛰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평상걸음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칠레에서 왔다고 했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한국의 ‘삼성’이 칠레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고 하였다. 나는 칠레의 포도 맛이 참 좋다고 했더니 칠레 과일은 일조량이 많고 청정한 지역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의 것보다 품질이 우수하다고 자랑을 하였다. 칠레의 와인도 좋다고 하였다. 우리는 미사시간에 맞춰 도착하였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파라곤에서 묵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모두 온 것 같았다. 아내는 어저께 갔던 특수한 여인들이 수용된 곳으로 갔다. 나는 깔리가뜨로 갔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환자들의 얼굴을 겨우 익힐 만한 때에 떠나게 되니 미안하고 아쉬웠다.

거기에는 무엇인가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을 만난다. 밥을 먹고 뒤처리가 어려워서 도움을 요청하는 환자, 옷에다가 변을 실수하고 손길을 기다리면서 웅크리고 있는 환자, 계속 무엇을 달라고 졸라대는 환자, 계속 큰소리를 지르면서 떠드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 기력을 완전히 잃고 곧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계속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아예 참여하지 말아야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 6일간만 일을 하고 나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마음이 무거워진다. 책임수녀님에게 나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였더니 수고하였다면서 또 오라고 하였다. 뒤통수가 부끄러웠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서 좀 더 많이 일을 하려고 욕심을 냈다. 환자들을 두 시간동안 목욕을 시키고 났더니 기운 뚝 떨어졌다. 날씨가 덥기도 했지만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몸이 지칠 대로 지쳤다. 휴식시간보다 30분 미리 옥상으로 올라가서 쉬었다. 이탈리아인 죠셉도 올라와 있었다. 그도 내일 꼴까따를 떠난다고 하였다. 나처럼 영어가 서둘러서 몸짓발짓 다하면서 의사를 표현하는데 반은 알아듣고 반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는 카톨릭 신자이며 집은 Sicily의 Vittoria이고 이탈리아에서 중학교 선생이었으며 과학을 가르쳤고 지금은 퇴직하여 쉬고 있다고 하였다. 자기 고향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라면서 이탈리아에 오면 꼭 자기 집을 찾아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기 집 주소와 e-mail주소도 적어주었다.

휴식시간이 되니 봉사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옥상으로 올라왔다. 우리의 젊은 친구들이 모두 내가 있는 곳으로 모였다. 거구의 중국(대만) 여인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웃음을 띠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 아마 얼굴이 똑같이 생긴 동양들이니까 서양 사람보다는 접근하기가 편안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나를 향하여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데 내가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내 옆에 있던 백00 군이 통역을 해주어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대단한 수다쟁이였다. 그리고 한국을 방문했던 이야기도 하였다. 내가 인천에 살고 있다니까, 자기도 인천에 있는 화교학교에서 6개월 간 봉사했었다면서 인천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한국에 머무는 기간에 그녀는 한국을 샅샅이 돌아다녔다면서 설악산 지리산 제주도 등등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라고 하였다. 특히 인천에 있을 때 북한산을 자주 올랐었다고도 하였다.  한국말도 간간 하는데 무척 유쾌하게 얘기를 해서 좌중을 즐겁게 해 주었다.

 

오전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내도  뒤따라 들어왔다. 그런데 목덜미에 생겼던 붉은 줄이 아침보다 더 커졌고 눈두덩도 많이 부어올랐다. 모니카에게 병원에 안내해 줄 것을 부탁하였더니 파라곤 여관에 머물면서 마더하우스에서 의료봉사하는 스페인 의사가 있으니 그에게 부탁해 보겠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는데, 스페인 간호사들이 와서 아내의 환부를 보고는 별 것 아니라고 하면서 연고제를 발라주고 갔다. 그녀들은 오후에 의사가 돌아오면 치료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8시 30분경에 스페인 여자의사가 일부러 우리 방까지 찾아와서 환부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연신 일찍 와서 봐주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하였다. 더위로 땀샘이 과다하게 작용해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이라면서 간호사를 통해 약(연고제)를 주었다. 의사가 간  다음 아내는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저녁에는 한국 사람들끼리 술 파티가 벌어졌다. 천안에서 원어민 교사로 1년간 근무했었다는 미국 젊은이 스티븐슨도 끼여서 술을 같이 마셨다. 화두가 고스톱의 화투놀이에 미치자 스티븐슨이 자기 주머니에서 화투를 꺼내어 놓아서 모두 놀라기도 하고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곧 고스톱판이 벌어졌다. 우리 젊은이들과 스티븐슨 그리고 아내가 고스톱을 하였다. 한쪽에서는 고스톱을 하고 한쪽에서는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또 태국에서 만나서 함께 꼴까따까지 오게 되었다는 한국아가씨와 미국 아가씨가 스스럼없이 합석하였다. 그들은  술도 잘 받아 마시고  아주 쾌활하였다.

파라곤에는 어저께까지만 하여도 일본 사람들이 많이 들어 있었는데 오늘은 한국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마더 하우스에 봉사하러 오는 사람들 가운데 일본인들이 많이 보였는데 오늘은 그들의 수효가 갑자기 줄어들고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학생들은 3월에 개학을 하기 때문에 2월 말이면 거의 귀국하고, 일본학생들은 4월에 개학하므로 3월 중순까지 인도를 많이 여행한다고 한다. 마더하우스에서 한 일본여인이 나에게 일본인이냐고 묻기에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일본인의 수효가 한국인보다 적다면서 실망이라고 하였다. 어저께까지만 하여도 일본인의 수효가 절대다수였다고 했더니 그랬냐고 하면서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여간 한국 사람들의 수효가 많아지니 여기가 인도가 아니라 한국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젊은이들이 노는 자리에 늙은이가 주책없이 오래 앉아 있는 것 같아서 그 자리를 빠져나와 내 방으로 들어갔다. 2층 테라스에서는 일본인과 서양 사람들이 어울려 악기를 다루면서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저들이 연주하는 악기소리가 자장가로 들렸으면 좋겠는데............

 

 

<스페인 간호사들>


<깔리 템플 앞에서--등허리에 다리가 하나 더 있는 기형의 소>

 


<NIRMAL HRIDAY 원장수녀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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