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 옥상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45. 아그라(2)
2005년 3월 8일(화) 맑음.
오늘은 일정을 아무것도 잡지 않았다.
시내 관광이나 할 수 있으면 하기로 하였다. 아그라에서는 타즈마할과 아그라포트만 관람하는 것으로 아그라 관광은 끝을 맺고 오늘 하루는 쉬는 날로 잡았다.
오전에 Jaipur로 가는 버스를 예약하였다. 여관에 맡겼는데 240+20(Charge)+260루피이다. 제대로 된 예약인지 모르겠다. 사람을 믿어야 하는데 어저께 어린 싸이클 릭샤왈라한데 당하고 나서는 모두에게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안는다. 사람이 사람을 의심한다는 것이 도리가 아닌데...........
오전에는 빨래하는 일을 돕다가 인터넷을 하려 갔는데 속도가 느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1시간을 허탕쳤다. 아내와 함께 점심을 한국음식을 시켜 먹었는데 여기서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고맙게 생각하고 먹었다. 음식점(Joinus) 집 아저씨도 친절하고 이집 아이도 아주 귀엽고 붙임성이 있으며 손님을 즐겁게 해준다. 음식이야 다른 곳과 별 차이가 없지만 주인들의 친절이 마음을 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여관에서 낮의 작열하는 햇볕 때문에 방안에서 3시 반까지 쉬었다. 낮잠을 청하였으나 허사였다. 아침에 힘들게 해놓은 빨래를 원숭이들이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 아침에 테라스 부근에 와 있는 원숭이들에게 식빵을 주었더니 그에 대한 보답 인사인가? 아내의 셔츠는 구명을 내놓았고, 내 속옷 하나는 아주 못 입게 만들었다. 원숭이들이 테라스 부근에 얼쩡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심심찮은 구경거리가 되어 좋게 보았는데, 빨래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후로는 좋게 보이질 않고 영악하고 간특한 동물로 보였다. 우리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쫓아버리면 오히려 우리를 약을 올리려 하는지 양철지붕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신경을 쓰게 하였다.
4시경에 시장 구경을 나갔다.
전기 코일과 물 컵을 사고, 야채시장에서 과일도 사왔다.
시장은 인도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고 항상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좁은 길에 오토바이 자전거 소 개 돼지 사람 등 살아있는 것은 모두 시장바닥을 찾아 나와 있는 것 같다.
자이뿌르 행 버스 예매를 가지고 왔다다. 내일 10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한다. 여관에서 예매해 준 것인데 제대로 한 것이겠지만 혹시 예매처의 농간에 의해 제 가격 이하의 차량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장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오토릭, 싸이클 릭샤가 우리 옆으로 다가와서 자기 차나 자전거를 이용해 달라고 하소연을 하였다. 그들의 그런 표정에 일말의 동정심이 가다가도 어저께 꼬마 자전거 릭샤에게 당한 일을 생각하면 그들의 그러한 호소의 표정 이면에 숨어있을 다른 마음씨와 표정이 떠올라 생각만 하여도 씁쓸하였다.
그런데 시장 어구에서 어저께 타즈마할에서 아그라 성으로 갈 때 우리를 태우고 갔던 그 꼬마 자전거 릭샤왈라 녀석을 만났다. 그 녀석이 우리를 보더니 아는 체하면서 웃음을 보냈다. 나는 조금도 반갑지 않고 속과 겉이 다른 교활한 녀석이란 생각이 들어 한 번 쳐다보고 외면을 해버렸다. 지나놓고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옹졸하다는 생각이 들어 후회가 되었다. 그 녀석을 만나서 얘기나 좀 나눠볼 걸......
시장 골목 한편 넓은 광장에서 힌두교인들이 모여 앉아있고 전면 중앙에 사두로 보이는 이가 신자들을 향하여 앉아서 힌두교 종교음악 비슷한 것을 계속 읊어대고 그 앞에는 신도들이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신기하여 한참 지켜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구경하지 말고 가라고 하여 혹시 좋지 못한 일을 당할까 싶어서 아쉬운 발길을 뒤로하였다. 조금 뒤로 물러나와서 보니 그곳에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판이 붙어 있었고 또 외인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바리케이트도 있었다.
아그라 어느 작은 시장 안에서 만난 아이들
시장통으로 다시 나오는데 어린 아이들이 우리를 애워싸고 어떤 녀석은 악수를 청하고 돈을 달라는 녀석과 우리에게 짓궂게 구는 녀석들이 도무지 우리의 길을 터주지 않았다. 간신히 그들을 물리치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도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우리가 무슨 별종이 되는 것처럼 ‘헬로! 헬로!......’ 어디를 쳐다보고 응답해 주어야 할지 분간이 서질 않았다. 개중에는 손을 잡아보는 사람, 악수를 청하고 손을 놓아주지 않는 사람, 옷을 당기는 사람 등등 참으로 우리가 이상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호기심을 다 채워주지 못하고 더 이상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해서 어둡기 전에 여관으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도 Joinus에서 김치볶음밥, 모모, 계란국을 시켜 먹었다. 시중을 들던 영감이 나에게 은근히 다가와서 팁을 부탁하였다. 그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10루피를 주었다. 주인인 줄 알았는데 고용원이라 하였다. 뭔가 속은 기분이 들어 조금 씁쓸했다.
어저께 우리와 거의 동시에 이 여관에 들었던 한국 여인들 3명이 내일 아침 일찍 잔시로 간다고 하면서 미리 인사를 하려 왔다. 배낭여행 중에 이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가? 거기다가 이렇게 예쁜 젊은이들이 어저께 아침에 딱 한번밖에 보지 않았는데도 나이 많은 동포라고 대접을 해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내가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그 반가움을 들어내어 인사했더라면 그들도 기분 좋게 생각했을까? 그런데, 늙은이들이 주책없이 젊은이들한테 심리적으로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염려되었다. 내가 너무 엉뚱한, 되지 못한, 쓸대없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그런데 그 젊은 여인들의 인사를 받고 나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예쁜 우리 젊은이들이 여행을 즐겁게 하고 무사히 귀국하기를 기원했다.
저녁에 좀 무료하여 여관부근을 산보를 하려고 나갔다. 한 이슬람 복장을 한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한국의 도시이름과 연세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홍익대 등 대학 이름과 서울 거리의 이름, 그리고 한국말 몇 마디를 혼자서 주워 삼키더니, 자기는 ‘반지’,‘ 목걸이’ 등 액세서리 디자이너인데 자기 가게에 좋은 물건들이 많이 있으니 지금 자기와 함께 가서 구경만하라고 하면서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노 탱규!’를 연달아 내뱉어도 도무지 내 의지는 무시하고 자기 말대로 따라 하여야 하는 것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액세서리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 간신히 떼어놓았다. 장사꾼들의 끊임없는 호객행위에 더 이상 산보할 맘이 없어져서 되돌아 여관방으로 들어왔다.
지금까지 접축했던 인도인들에게서 보고 느낀 색다른 모습들이 내 마음 속에 좋지 않게 각인될까 걱정이다. 좀 좋은 것만 기억하도록 생각을 바꿔야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낮에는 힌두교인들의 시가 행렬이 있었다. 한 100여명이서 앞쪽에서는 차량이 힌두교의 신상을 모셨고 그 뒤에서 악대가 따랐으며 어느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힌두 종교 경전을 읊는 것인지 종교음악을 하는 것인지 대열의 분위기를 선도하였다. 다음에는 울긋불긋한 차림의 여인들이 병처럼 생긴 항아리들을 이고 행렬을 지어 뒤따랐고 그 뒤에는 남자들의 행렬이 이어졌으며, 맨 뒤편에는 마차에 행렬 선두의 것과는 다른 신상을 마차에 싣고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도 힌두교인들의 행렬이 지나갔다. 낮에 맨 뒤쪽 힌두신상을 싣고 가던 마차가 이번에는 선두가 되었는데 바로 그 뒤를 따르는 남자들이 싸움터에 나가는 사람들처럼 막대기를 휘두르면서 갔다. 다질링 이슬람인들의 카니발에서 막대기를 휘두른 것을 본 일이 있어서 Joinus에 있는 영감에게 혹시 이슬람인들의 축제가 아니냐고 물어보았더니 힌두교인들의 행사라고 하였다.
힌두교인들의 종교의식 진행 행렬
영감에게 이지역의 힌두인과 이슬람인들의 비율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수효가 대등(?)하다고 하였다. 충돌은 없느냐니까 서로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사실이기를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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