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22일(화요일) 오전 靑 오후 구름
21일 로스안젤레스 공항에서 현지시간 17시4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상파울로의 현지시간 10시 50분에 도착하였다. 로스안젤레스보다 쌍파울로가 5시간 빠르다. 숙소를 이케다(Ikeda)로 정했다가 인터넷의 어떤 글에서 Pension Araki를 추천한 글을 보고 그리로 찾아갔다. 방이 도로면에 접해 있어 소음이 심했다. 3일간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비행기에서 상파울로에 상주하는 기업체 직원과 동석을 하였는데 그는 은근히 내게 겁나는 말만하여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잔뜩 주눅이 들어 겨우 숙소를 찾아왔다. 그런데 공항에 내려서 사람들에게 길을 묻기도 하고, 타고 가야할 교통편을 묻기도 하였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종이에 가야할 목적지를 써서 보여 주면서 길을 물었다. 어떤 사람은 전철까지 안내해주면서 자기 교통카드로 나를 개찰구 안으로 넣어주기도 하고, 또 내가 타야할 버스 정류장까지 와서 버스를 태워주면서 자기 교통카드로 요금을 지불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주관을 가지고 있다. 그 대상에 따라 주관도 크게 좌우된다. 비행기에서 만난 현지상주 직원은 상파울로에 와서 겪었던 좋지 않은 현상에 대한 충격이 컸던 관계로 다른 좋은 면이 마음에 들어와 앉을 자리를 스스로 차단해 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오늘 상파울로에 오면서 겁나는 몇 마디 말에 잔뜩 긴장하였는데 아무 탈 없어 여관에 찾아온 다음 모든 긴장이 싹 씻겨나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모두 착한 사람이기를 바라면서----
Pension Araki의 여사장은 일본인이고 그 자녀들은 좀 인종적으로 복잡한 것 같았다. 아버지가 브라질리언이라는 딸이 있고, 얼굴이 완전히 동양계인 다른 딸들도 있다. 그녀들은 일본인들의 그 싹싹하고 친절한 특유의 상냥스러운 몸가짐으로 손님들을 맞아주었다. 그리고 이 여관은 모두 일본인들만 투속하였고 나만 이방인이었다. 일본인들도 모두 친절하여 마음 편안하게 첫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어가 오믈렛이란 단어가 들어간 음식을 시켰더니 얼마나 많은 양이 나왔는지 3분의 1정도만 먹고 맥주 한 병 마시고 15R$이나 주었다. 우리 돈 일만 원에 가까운 돈이다. 내일은 주인아주머니가 소개해준 한국식당을 찾아가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2월23일(수요일) 맑음 오후에는 구름
지난밤은 무척 피곤하여 깊은 잠을 많이 잔 것 같고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몸도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초저녁에는 길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또 긴장도 되어 쉽게 잠이 들것 같지 않았는데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이 여관 부근은 일본인 이주자들의 밀집지역이라서 일본에 온 느낌이 든다.
이곳 Araki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여관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여관에 들어온 손님들 대부분이 일본인들이다. 이전에 여행을 하면서 도미토리를 이용할 경우에 일본인들과 함께 지낸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들은 무척 친절하고, 믿음이 가고 안심도 되었다.
옆 침상의 일본 청년은 2년째 남미를 여행하고 있는 중이라 하였다. 2년의 대부분을 아마존 정글을 탐험해왔는데 앞으로 2년을 더 계획하고 있다고 하였다. 일본인들의 탐험심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아침나절에는 조아뀜(Joaquim) 거리를 따라가다가 동양인 거리(Barao Iguape)로 들어서서 여관주인이 알려준 대로 한국음식점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거의 모두가 중국음식점과 일본인들의 상회였다. “韓國館”이란 레스토랑이 보였으나 문이 잠겨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조금 뜸한 골목으로 갔더니 거기에 한국인의 노래방이 보였고 “대문(大門)”이란 한국음식점이 있었다. 반가워서 얼른 들어섰다. 그러나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 종업원들뿐이었다. 지난 번 미국 세도나에서 태극기가 내걸린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도 한국인은 보이지 않고 서양종업원들만 보여서 약간 실망스러웠는데 상파울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양인의 거리
된장찌개를 시켜놓고 앉아 있으니 한국인 두 명이 들어와서 코너로 가서 앉았다. 반가웠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밀담에 몰두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말도 붙여보지 못하였다. 소통의 길이 막힌 것 같아 가슴이 조금 답답했다.
음식점을 나와 답답했던 마음을 훌훌 털고 다시 동양인의 거리로 나가서 리베르다데(Liberdade) 광장을 지나 Se 광장 쪽으로 갔다. 세 광장 주위에는 웅장한 현대건물들이 포진하였다. 큰 건물을 중심으로 경관들이 엄정한 자세로 경비 서 있고 광장 한 가운데로 세 광장의 숲길을 걸어가는데 모든 벤치는 걸인들이 대부분 차지해서 앉아 쉴 만한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Se광장 옆에 있는 성당건물
세 광장
세 광장의 공원을 돌아 나오다가 인터넷 방을 발견하여 찾아들어갔다. 비행기 티켓 16매를 프린트했는데 17R$ (USA$10)이나 지불했다. 브라질 물가가 엄청 높다. 이러다가는 하루 비용이 100$가까이 될 것 같다.
2011년 2월24일(목) 맑고 흐리다가 비도 오고
오늘은 장거리 버스터미널 티에테에 가서 리오 데자네이로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리퍼블리카(Republica) 광장일대를 돌아보았다. 좀 신중하게 모든 것을 챙겨보고 또 확인한 다음에 실행해야 하는데, 오늘은 덤벙거리다가 실수에 실수를 거듭했다.
첫 실수는 티에테(Tiete) 장거리 버스터미널로 가는 전철의 방향만 확인하고 역명을 간과했다. 장거리버스터미널이 전철 종점역 투쿠르비(Tucurvi)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감(感)만 가지고 종점까지 갔다. 종점 전철역 앞에서 만난 친절한 경찰관이 장거리 버스터미널을 지나왔다면서 몇 정거장 되돌아가야 한다고 일러주어 잘 찾아갔다. 터미널이 복잡할 줄 알았더니 아주 한가하고 매표소를 찾기도 쉬웠다.
버스표를 예매하여 돌아오는 길에 리퍼블리카 광장을 간다는 것이 “세”역에서 그 반대방향으로 가는 전차를 탔다. “돔 페드로”라는 역에서 내려서 오던 방향으로 되돌아가서 “리퍼블리카” 역에 내린다는 것이 이번에는 한 정거장 전역인 “안항가바우(Anhangabau)”에서 내렸다. 여기도 광장이 넓게 자리 잡고 고층건물이 광장 주위를 에워싼 번창한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가 “리퍼블리카”광장으로 잘못알고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세”역 쪽으로 돌아오는 전철을 탔는데 지나가는 역의 이름이 Se가 아니고 Republicark 나오고 그 타음역이름은 Santa Cecilia가 나타났다. 출입구문을 보니 이번에도 반대차선을 탔던 것이다. 다 .그래서 전철을 바꿔 타려고 다음 역에 내렸는데 거기가 “리퍼블리카”역이었다. 늙어서 판단력과 순발력이 떨어져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
Anhangqbau거리
Republica 거리
리퍼블리카 지역은 많은 사건이 발생하는 지역이란 나쁜 소문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광장 주변에 경관들이 순행하는 모습도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기도 하고 공원 곳곳에서는 젊은 남녀들의 다정한 모습도 보이고 또 눈이 풀어져 멍하니 길바닥에 앉아 있는 걸인들도 많이 보였다. 이런 곳에서의 경계 대상은 거리에서나 공원에서 눈동자가 풀린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와 나를 공격의 대상으로 노리는 자가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오늘이 나의 상파울로 마지막 일정이라서 한국인을 만나면 한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거리가 어디인지 물어서 찾아 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인을 만나지 못하였고, 한국인이 모여 사는 곳도 어디인지 모르고 상파울로를 떠나게 되었다.
여관으로 돌아오다가 저녁식사를 해먹으려고 대형 마켓에 들려 고기와 빵을 사가지고 주방에 들어갔더니 이 여관에 장기투숙하고 있는 일본 할머니(75세)가 식사를 하고 계셨다. 스페인계 남편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확실한 것은 잘 모르겠다. 나는 처음에 여관 주인아주머니와 친척관계인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연로하고 건강도 좋아 보이지 않은 분이 보헤미안(Bohemian)과 같은 처지는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여행하는 모습이 부럽다면서 나의 여정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면서 이야기를 걸어왔지만 짧은 영어로 얘기하자니 통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고국을 떠나 떠돌이 생활하는 속사정이야 어쨌든 늙은이 혼자 몸으로 낯선 이국땅에서 고국으로부터 오는 여행자들을 만나 담소하는 것으로 시간을 소일하고 있는 모습이 딱해보였다. 할머니는 일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데 일본 여행자들도 할머니를 이야기의 대상자로 상대해주는 것이 아니라 의례적인 인사나 몇 마디 나누는 것이 고작인 것 같았다. 나이 많으면 젊은이들한테 끼어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야기의 소재도 한계가 있고 생각의 각도와 느낌도 다르다. 소통은 필요하지만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이 아니면 대화의 폭도 깊이도 좁고 얕다.
나도 내 나이 70이 지났으니 여행을 하면서 자연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내 말을 줄이고 의견을 말하기보다 사실에 바탕을 둔 사안을 알리는 것에 주안을 두어야 되겠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늙은이의 설교형 이야기가 튀어나와서 스스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여행 정보를 나누되 젊은이들의 말을 듣는 것을 중심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조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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