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 10일)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온천 탕으로 향하였다. 내가 제1등인 모양이었다. 내가 탕에 도착했을 때는 관리인이 탕을 청소하고 탕에 새로 온천수를 채우고 있었다. 새 물로 갈아 채워서 탕이 깨끗하였다.
온천욕을 하고 나와서 온천수를 끌어오는 원천에 가보았다. 땅에서 솟아오르는 온천수는 너무 뜨거워서 손을 물에 담글 수가 없었다. 원천수의 관리가 좀 허술해 보였다. 주변졍리를 하여 원천수를 깨끗하게 관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온천장의 주변 경관도 아름답다. 이곳에서 온천욕도 하면서 며칠 묵었으면 좋겠다.
9시에 온천장을 출발하여 하르허린으로 향하였다.
오늘은 6호차를 탔다. 세계방랑자님이 이번 여행 기간 동안 남짜끼리 모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면서, 오늘은 6호차에 남자만 타자고 제의하여 그렇게 했다.
온천수가 방류되는 곳에서
초원을 가로지르고 민둥산에 가까운 높은 고갯마루를 넘고 또 뽀얀 먼지를 일으키면서 초원길을 달렸다. 초원으로 이뤄진 산허리에는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파란하늘에는 깃털같은 구름이 두둥실 떴다. 하르허린에 가까워지자 도로 포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포장이 된 곳을 달리다가 비포장 도로로 들어서기를 반복하였다.
먼지를 날리면서 산길을 오르다
풀을 뜯는 양떼
초원 위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걸려있고
도로 포장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초원이 사막화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11시30분 경에 하르허린으로 들어가기 직전 오르혼(Orkhon) 강을 건너서 강가 초지(草地)로 들어갔다.
오르혼 강가에서 본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모양도 좋다. 모두 카메라를 꺼내들고 파란 하늘의 아름다운 구름의 모습을 좀더 보기좋게 사진에 담으려고 하였다.
강가에서 자연경관에 매료되어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 기사들과 가이드들은 우리들의 점심식사 준비에 여염이 없었다. 하르허린에 도착하자 햇볕이 강하여 모두 그늘을 찾았다. 그러나 기사들과 가이드들은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식사준비를 하였다.
강가 나무그늘에서 밥과 라면으로 맛잇게 점심식사를 하고 엘덴조 사원으로 향햐였다.
오흐혼 강의 둔치
오르혼 강가에서 바라본 하르허린 시내
하르허린
하르허린은 몽골 고원의 중심에 위치하였다.
하르허린은 고대로부터 교통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유목 도시로서 갖추어야 할 지형적인 요소들이 적합하여 유목제국들이 이 주변에 수도를 세웠었다고 한다. 징기스 칸이 몽골제국을 건설하여 하르허린에 수도를 세우기로 하였는데, 그 아들인 우구데 칸(오고타이 칸)이 1235년부터 도시를 넓히고 궁궐을 세웠다. 그러나 징기스 칸이 왕과 귀족들을을 이 도시에 정착하는 것을 금하고 매년 450km 정도를 이동하는 유목생활을 명령하였기 때문에, 왕과 귀족들은 이곳 수도 하르허린에서는 초봄과 초가을의 몇 일만 보냈다고 한다. 이후 중국지역을 통치하던 호빌라이(쿠빌라이) 칸이 몽골 중앙지역을 통치하던 동생 아릭 부케와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여 몽골제국 제4대 칸이 되면서 1266년에 수도를 북경으로 옮겼다. 호빌라이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면서 하르허린을 약탈하고 떠났기 때문에 수도를 건설한 30년만에 페허가 되버렸다.
몽골의 칸들은 종교를 평등하게 대하였기 때문에 하르허린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이 공존했다고 한다. 이 도시가 정치 문화 경제 무역 등의 중심지로서 동서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극히 짧은 기간이었다. 1889년 러시아 학자 야드린체브에 의해 하르허린이 몽골제국의 수도였음을 밝혀내고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몽골 몽골인, 어럴저뜨 지음, 도서출판 두르가- 발췌>
엘덴조 사원
몽골제국의 하르허린 엣 궁궐터에 새워진 몽골 최초의 라마불교 사원이다. 엘덴조 사원을 지을 때 하르허린 부근의 파손된 비석과 벽돌 등 옛 몽골제국의 왕궁터의 부재를 사용하였다. 1586년 칭기스 칸의 21대 후손인 아쁘타이 사잉 칸이 엘덴조 사원의 첫 전각인 걸 조(중앙전각)를 지은 것을 시작으로, 이 때부터 불교가 왕실의 지원을 받아 몽골 전역으로 급속히 퍼저나갔다. 엘덴조 사원은 외벽에 108개의 불탑과 사방 네 개의 문을 만들고 내부에는 60개의 전각에 천 여명의 승려가 사는 게르와 집으로 구성된 거대한 사원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스탈린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고 15개의 전각만 남았다. 대부분의 승려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파괴되어 페쇄하였던 사원을 1965년에 일부 수리하여 박물관으로 변경하였다가 1990년 초 민주화의 영향으로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면서 다시 사원으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몽골 몽골인, 어럴저뜨 지음, 도서출판 두르가- 발췌>
엘덴조 사원의 탑과 외벽
엘덴조 사원의 서쪽 출입구
엘덴조 내부
전각들
게르 터
전각들
중앙전각
잠바자르의 아버지 무덤이라고 알려진 사원의 중앙납
게르 터